식물원을 만들겠다는 결심
발밑을 수놓는 아기자기한 별꽃, 샛노란 물결을 이루는 황매화,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는 수수꽃다리와 심장 모양을 닮은 금낭화까지. 야생화들이 저마다의 색으로 피어나는 곳, 바로 ‘한택식물원’이다. 지금은 9,700여 종, 무려 1,000만 본의 식물이 숨 쉬는 거대한 생명의 터전이지만, 이 기적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 이택주 원장의 꿈은 놀랍게도 ‘식물’이 아니었다. 그의 꿈은 원래 푸른 초원 위에서 소를 키우는 목장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뒤 건설 현장을 누비며 돈을 모아 고향 용인에 땅을 사 초지를 일구고 200여 마리의 소를 키웠다. 꿈에 다가서는 듯했던 순간, 전국을 휩쓴 ‘한우 파동’이 모든 것을 뒤흔들었다.
“목장을 조성하면서 산사태를 막기 위해 나무를 심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나무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러다 선진국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어요.”
그렇게 떠난 유럽 배낭여행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영국 큐 왕립식물원이 무척 인상 깊었어요. 전 세계의 희귀하고 아름다운 식물들이 경이롭게 숨 쉬고 있는 식물원이 거대한 지상 낙원 같더라고요.”
당시 유엔 가입국 중 식물원이 없는 나라가 한국뿐이라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그 순간 ‘이건 내가 한번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귀국 후 그는 소를 키우던 초지에 나무와 자생식물을 하나둘 심기 시작했다. 누가 돌봐주지 않아도 거친 땅을 뚫고 올라오는 야생화의 경이로운 생명력에 매료됐다. “어느 순간 식물이 저를 끌고 가더라고요.” 그렇게 시작된 작은 시도가 지금의 드넓은 식물원을 만들었다.
식물은 환경이 먼저다
한택식물원은 여느 수목원처럼 화려하게 각 잡힌 정원이나 인공적인 조형물이 드물다. 대신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숲과 계곡, 바위틈에 식물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이는 ‘식물이 살기 좋은 환경을 먼저 만든다’라는 이택주 원장의 철칙에서 비롯됐다. “식물을 키울 때 가장 중요한 건 환경이에요. 식물은 그 환경이 맞아야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내거든요.”
그래서 한택식물원은 식물을 모아놓은 공간이 아니라, 식물이 살아갈 수 있는 생태를 먼저 설계한 공간이다. 침엽수원, 약용식물원, 덩굴식물원, 비비추원, 모란작약원 등 34개의 테마정원 역시 토양, 습도, 햇빛 등 조건에 맞춰 구성된 ‘식물들의 맞춤형 집’이다.
식물마다 꽃이 피어나는 시간도 제각각이다. 어떤 꽃은 몇 달 만에 화려하게 피어나지만, 이른 봄을 알리는 복수초 같은 식물은 척박한 땅에서 6년의 혹독한 시간을 견뎌야 비로소 노란 꽃을 터뜨린다. 그는 그 기다림의 시간을 묵묵히 지켜보며 식물원을 가꿔왔다.
자연 그대로의 봄을 만나는 곳
이택주 원장은 한택식물원의 역할을 ‘보존’과 ‘연결’이라고 말한다. “식물종이 다양해야 동물종도 다양해지잖아요.”
들풀 하나가 사라지면 그 식물에 기대어 살던 곤충이 사라지고, 결국 생태계 전체가 흔들린다. 그래서 이곳은 단순한 정원이 아니라 멸종위기에 처한 식물을 ‘보존’하고,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것.
“식물을 지킨다는 건 결국 미래세대가 살아갈 자연을 지키는 일이죠. 그게 제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설악산 계곡에서 만난 복수초, 대관령 숲에서 마주한 야생화의 기억은 그를 지금까지 이끌어온 방향이었다.
그래서일까. 한택식물원의 봄은 화려하게 꾸며내지 않는다. 대신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개화의 시계에 맞춰, 있는 그대로의 민낯을 보여줄 뿐이다.
“식물은 자연 그대로일 때 가장 아름다운 법이에요.”
그는 이곳을 사람들이 자연을 느끼고 쉬어가는 공간, 다양한 생명이 함께 살아가는 터전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오래 머물 한택식물원의 봄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