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해 컴퓨터를 켠다. 오늘은 중요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자료도 어느 정도 준비되어 있다. 그런데 막상 문서를 열어 놓고 나면 선뜻 첫 문장을 쓰기가 쉽지 않다. 자료를 조금 더 찾아볼까, 밀린 이메일을 먼저 확인할까 고민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꽤 지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으면서도 시작을 미루곤 한다. 이러한 현상을 ‘지연행동(Procrastination)’이라고 부른다. 실제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는 약 88%가 하루 최소 1시간 이상 일을 미루는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또 다른 연구에서는 성인의 약 20%가 만성적인 미루기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즉 일을 시작하기 어려운 것은 개인의 의지 부족이라기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심리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완벽하려다 시작이 늦어질 때
일의 시작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는 완벽주의다. 완벽주의는 흔히 책임감 있고 성실한 성격으로 보이지만, 때로는 행동을 늦추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일을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강할수록 작은 실수나 타인의 평가에 대한 걱정이 커지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흔히 말하는 ‘완벽주의의 역설’이 있다. 더 잘하려고 할수록 오히려 시작이 늦어지는 현상이다.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질수록 준비와 고민은 길어지고, 정작 행동은 뒤로 미뤄지기 쉽다. 예를 들어, 보고서를 완벽하게 작성하려고 자료를 계속 찾다가 정작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발표 자료를 만들 때도 더 좋은 표현을 찾느라 슬라이드를 계속 수정하다 보면 중요한 내용 정리는 뒤로 미뤄지기 쉽다. 정신건강의학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분석 마비(Analysis Paralysis)’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행동이 늦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작은 행동이 시작을 만든다
흥미로운 점은 행동이 생각보다 마음을 더 빠르게 바꾼다는 사실이다. 정신건강 치료에서 널리 활용되는 인지행동치료에서는 ‘행동 활성화(Behavioral Activation)’라는 접근을 강조한다. 기분이 나아지거나 의욕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작은 행동을 먼저 시작하는 것이 동기와 에너지를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원리다. 즉 의욕이 생겨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의욕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우울감이나 무기력감으로 집에만 머물며 활동을 줄이게 되면 기분도 더 가라앉기 쉽다. 이때 행동활성화 치료에서는 “하루에 5분만 집 앞을 걸어 보자”처럼 아주 작은 행동부터 시작하도록 권한다. 이러한 작은 행동이 반복되면 활동량이 조금씩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기분과 에너지가 점차 회복되는 경우가 많다.
이 원리는 직장 생활에서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고서를 작성해야 할 때 ‘보고서를 완성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하면 부담이 커지기 쉽다. 대신 문서 파일을 열어 제목을 적거나, 목차를 간단히 정리해 보는 것처럼 아주 작은 단계부터 시작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첫 문장을 쓰는 것이 어렵다면 참고할 내용을 메모해 보는 것도 하나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이메일을 작성해야 할 때도 완벽한 문장을 고민하기보다 핵심 내용 몇 줄을 먼저 적어 보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이렇게 시작의 문턱을 낮추면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이어지기 쉽다.
또 “오늘 안에 다 해야 한다”라는 생각은 부담을 크게 만든다. 이럴 때는 짧은 시간만 집중해 보겠다고 정해 보는 방법도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10분이나 20분 정도 타이머를 맞추고 그 시간 동안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해 보는 것이다. 일정한 시간 동안 집중하고 잠깐 쉬는 방식은 흔히 ‘뽀모도로 기법(Pomodoro Technique)’으로 알려져 있다. 오랫동안 해야 한다는 부담 대신 “잠깐만 해 보자”라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다. 실제로 일을 시작하기만 하면 생각보다 집중이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일을 작은 행동으로 나누어 시작하는 것은 시작에 대한 부담을 줄여 준다. 작은 행동 하나가 다음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이어진 행동들이 결국 일을 완성하게 만든다. 작은 시작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일의 흐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도약은 작은 시작에서 만들어진다
우리는 종종 큰 변화가 거대한 결심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변화는 훨씬 작고 단순한 행동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완벽한 준비를 기다리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행동을 시작하는 것, 망설임 속에서 내딛는 한 걸음이 결국 더 큰 변화를 만든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글을 작성하다가 막힐 때 “완벽한 글을 쓰려 하지 말고 한 문장만 쓰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완벽한 작품을 쓰려 하기보다 한 문장부터 시작하면 그 다음 문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의미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완벽하게 하려 하지 말고 일단 작은 것 하나만 시작해 보자. 보고서라면 제목 한 줄, 회의 준비라면 안건 하나, 미뤄 둔 일이라면 단 1분만 손을 대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쩌면 변화는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지금 시작하는 아주 작은 행동 하나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책상 앞에 앉아 있다면, 잠시 미뤄 두었던 그 일을 지금 단 한 줄이라도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