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신이 바다를 만났을 때
티베트고원에서 발원해 중국 내륙을 가로질러 황해로 흘러드는 황하(黄河). 중국 고대문명의 발상지로, 중국인들이 ‘어머니 강’이라 부르는 강이다. 이렇게 거대한 강을 다스리는 신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중국 신화에는 바로 그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름은 하백(河伯). 풍이(馮夷), 빙이(冰夷)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흥미로운 건 하백이 우리나라 역사에도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고구려 건국신화에서 그는 바로 주몽의 외할아버지로 나온다. 다만 중국 신화 속 하백과는 이름만 같은 동명이인으로 여겨진다.
중국 신화 속 하백은 강 아래 궁전에 살며 강과 하천을 다스리는 수신(水神)이었다. 비바람을 일으키고, 물의 흐름을 다스리는 힘을 지녔다고 전해진다. 말하자면 강을 책임지는 ‘최고 관리자’와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의외로 그는 자유로운 성격의 신이었다. 호기심이 많아 가만히 머무르는 법이 없었다. “강이 흐르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지.” 강물처럼 흐르며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어느 날 그는 강을 따라가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마주하게 된다. 그동안 황하가 세상에서 가장 큰 강이라 생각해 왔던 하백은 그 광경에 깜짝 놀란다. 그때 바다를 다스리는 신, 약(若)이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설명할 수 없는 법이지”라고 말했다.
『장자』에 나오는 ‘정와불가이어해(井蛙不可以語海)’라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좁은 세계에 갇혀 있으면 넓은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백은 그날 처음으로 세상의 크기를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강으로 다시 돌아오다
하백은 여행 말고도 좋아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화려함이다. 그의 행차는 언제나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두 마리의 용이 끄는 연꽃 장식 수레를 타고 강 위를 순행했기 때문이다. 물 위를 떠다니는 화려한 수레가 나타나면 강가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그는 재물도 좋아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공물을 요구하며 제사를 받곤 했다. 강이 넘칠까 두려웠던 사람들은 곡식과 재물을 바치며 “하백님, 강을 잠잠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공물 요구가 지나치자 사람들의 원성이 커졌다. 이 일로 아내 복비와도 갈등이 생겼고, 결국 명궁 예(羿)가 쏜 화살에 하백은 왼쪽 눈을 잃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하백은 예전과 달라졌다. 강을 따라 세상을 떠돌던 방랑의 신은 고향 근처에 별궁을 짓고 조용히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강물처럼 흐르던 신도 결국 자신이 지켜야 할 강으로 돌아온 셈이다. 어쩌면 그 여정 속에서 하백은 세상의 넓이를 배우고, 또 한 번 스스로를 넘어서는 경험을 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