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맛은 나라별로 다르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닮아 있다.
행운을 나누고, 복을 기원하고,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는 음식들.
각국의 전통이 깃든 한 접시는 한 해의 첫 순간을 더 특별하게 만든다.
세계의 새해 음식들 속에 담긴 이야기와 풍요로운 맛을 소개한다.
글. 최행좌
행운의 황금 파이갈레트 데 루아
프랑스에서는 새해가 밝는 순간, 가족과 이웃이 함께 모여 ‘갈레트 데 루아(Galette des Rois)’를 한 조각씩 나누며 서로의 앞날에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황금빛 페이스트리는 바삭하게 부서지며 그 속에서 은은한 아몬드 크림 향이 퍼진다. 겉은 가볍게 갈라지고 속은 촉촉하게 감싸는 ‘겉바속촉’의 매력이 고스란히 담긴 파이다.
그러나 진짜 설렘은 그 안에 숨겨진 작은 도자기 인형 ‘페브(Fève)’에서 시작된다. 포춘쿠키처럼 뜻밖의 순간을 품은 이 작은 인형을 누가 찾아내느냐에 따라 그날의 왕과 왕비가 정해진다. ‘왕의 빵’이라는 이름답게 페브를 찾은 사람은 종이 왕관을 머리에 올리고 하루 동안 모두에게 축복을 받으며 특별한 대접을 누린다.
프랑스의 새해 풍경은 한 조각의 파이가 행운이 되고, 작은 인형 하나가 하루의 마법을 여는 달콤한 순간으로 시작된다.
복과 길조를 담은 찬합오세치
오세치(おせち)는 일본의 새해를 상징하는 대표 음식이다. 커다란 3~5단 찬합에 구이, 초절임, 찜, 조림 등 20~30가지의 음식을 정성스럽게 채워 넣는데, 구성은 지방과 집안마다 조금씩 다르다.
도시락 형태의 찬합에 오세치를 담기 시작한 것은 에도 시대 이후로, 신에게 올리는 제물의 의미와 함께 가족의 건강과 번영을 기원하는 ‘엔기모노(吉兆物, 길조를 비는 음식)’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오세치에는 새해의 복을 부르는 상징적인 재료들이 가득하다.
장수를 의미하는 도미와 새우, 풍년을 기원하는 멸치, 자손 번영을 담은 청어알(카즈노코), 행운의 검정콩(쿠로마메), 지혜를 상징하는 연근, 재물운을 더하는 밤까지. 각각의 음식은 작은 부적처럼 의미를 품고 있다.
최근에는 집에서 직접 만들기보다 예약 주문을 이용하는 가정이 늘었고, 전통 일본 요리뿐 아니라 프렌치 스타일로 재해석한 고급 오세치도 인기를 끌고 있다. 전통과 현대가 한 상 위에서 어우러지는 일본의 새해 풍경이다.
왕관에 숨긴 축복의 조각로스카 데 레예스
로스카 데 레예스(Rosca de Reyes)는 멕시코의 새해를 밝히는 상징 같은 빵으로, 왕의 왕관을 닮은 둥근 도넛 형태가 특징이다. 원형의 빵 반죽 위에는 설탕에 절인 형형색색의 과일이 장식처럼 놓여 있는데, 이는 보석처럼 빛나는 왕관의 장식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빵을 종종 사랑스럽게 ‘로스카(Rosca)’라고 부르기도 한다.
부드러운 빵 속에는 작은 구운 인형이나 상징물이 숨겨져 있다. 함께 나눠 먹는 동안 누군가의 조각에서 그 작은 인형이 모습을 드러내면, 그 사람에게는 한 해 동안 행운이 깃든다고 믿는다. 마치 빵 속에 숨겨 둔 작은 기적을 찾는 의식처럼 로스카 데 레예스는 단순한 빵을 넘어 새해의 축복을 함께 나누는 멕시코의 따뜻한 전통이다.
건강과 번영을 기원하는 한 그릇페이조아다
페이조아다(Feijoada)는 검은콩과 돼지고기, 소고기를 오래도록 푹 끓여 만든 스튜로, 브라질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국민 음식이다. 이름 그대로 ‘콩으로 만든 요리’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그 속에는 아픈 역사와 생존의 지혜가 함께 담겨 있다.
노예 시절, 주인들이 먹지 않던 돼지의 귀·코·내장 같은 부산물을 모아 검은콩과 함께 끓여 먹던 데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버려진 재료였지만 긴 시간과 정성은 그것을 깊은 맛으로 바꾸어 주었고, 페이조아다는 고난 속에서도 삶의 맛을 지켜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음식이 됐다.
특히 브라질에서는 새해를 맞이할 때 페이조아다를 먹는 것이 가족과 이웃의 건강과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로 이어져 왔다. 검은콩의 풍성함과 오래도록 끓여 우러난 깊은 맛이 한 해를 든든하게 시작하라는 상징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진하게 우러난 페이조아다는 브라질식 쌀밥 아로즈(Arroz)와 고소한 파로파(Farofa), 매콤한 핫소스를 곁들이면 비로소 완성된다. 이렇게 한 그릇이 주는 온기는 새해의 식탁을 더욱 풍요롭게 채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