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에서 냉장 보관하는 혈액백이 잦은 정전으로 손상돼 버려진다?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남태평양 작은 섬나라, 총인구 84만 명 규모의 솔로몬제도에서는 불과 3년 전 일어난 사건입니다. 솔로몬제도 수도 호니아라 국립전원병원(NRH)이 보유한 다량의 혈액백이 빈번한 정전으로 인한 냉장고 오작동으로 손상·폐기된 겁니다.
실제로 이 나라는 만성적인 전력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디젤 발전이 국가 전력 97%를 차지하는데 그마저도 전량 수입에 의존합니다. kWh당 전기요금이 0.8달러로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6~7배 더 비쌉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 달러를 넘어 4만 달러를 바라보는 우리나라와 달리 솔로몬제도는 2,000달러 남짓입니다. 충전식으로 쓰는 전기요금 부담에 현지인은 휴대전화 충전조차 망설인다는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국토가 여러 섬으로 분산된 탓에 전력망도 불안정합니다. 그나마 병원, 호텔 등 주요 시설에는 대체발전기가 있어 금세 조명이 켜지지만, 대다수 주민은 솔로몬전력청이 정전을 해결할 때까지 어둠을 감내해야 합니다. 솔로몬제도 정부가 이 나라 최초의 수력발전 댐을 짓는 ‘티나 프로젝트’를 한국수자원공사 등과 추진하는 이유입니다. 2028년 상업운전을 목표로 호니아라 티나강 유역에 건설 중인 15MW급 수력발전 시설이 가동하면 수도 호니아라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70%를 충당한다고 합니다. 전기요금은 30~40% 정도 낮아질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는 티나 프로젝트 취재차 한국수자원공사의 협조를 받아 지난해 11월 19일부터 21일까지 호니아라에 사흘간 머무르며 보고 들은 일부입니다. 티나 댐 건설 현장과 사업 배경 등을 주로 취재했습니다만, 가장 강렬하게 남은 기억은 ‘일상적 정전’ 이었습니다. 이 나라에서 유일한 4성급 호텔에서도, 일반 주택에서도 정전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호니아라에서의 마지막 밤. 한국수자원공사 직원 숙소에서 식사하던 중 여섯 번 연속 정전이 일어났을 때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당연한 한국에서의 삶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새삼 떠올렸습니다.

햇빛과 바다만큼은 눈부시게 빛나던 솔로몬제도. 이면의 현실은 전후 극히 어려웠던 한국의 과거와 맞닿아 보였습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인 1970년대. 우리나라도 소양강댐,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등을 지으며 경제 발전의 기틀을 탄탄히 다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비록 출발은 많이 늦었지만, 솔로몬제도도 한국과 국제기구의 협력을 바탕으로 미래 성장의 기반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머나먼 곳에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한국수자원공사, 건설공사를 맡은 현대엔지니어링 직원들의 구슬땀은 이 나라의 어둠을 밝혀 줄 빛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현지에서 만난 맥키니 덴타나 솔로몬제도 재무부 차관은 티나 수력발전이 연간 경유 1,800만ℓ를 대체할 수 있고, 이는 1,700만 달러 규모의 수입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양이라고 밝혔습니다. 물론 수력발전 댐 하나가 이 나라의 고질적인 문제를 다 해결해 줄 수는 없겠지요. 이번 프로젝트가 솔로몬제도의 본격적인 부흥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티나 프로젝트 계약서에는 한국수자원공사와 현대엔지니어링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인 티나수력발전유한회사(Tina Hydropower Limited, THL)가 30년간 티나 댐을 운영· 관리하며 솔로몬전력청에 전력을 판매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적어도 2060년까지는 한국수자원공사 직원 4명이 현지에 머물러야 한다고 합니다. 그때는 지금 솔로몬제도에 있는 프로젝트 실무진은 물론 저도 백발의 노인이 돼 있겠지요. 솔로몬제도는 어떤 모습일까요?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듯, 국제사회가 ‘티나강의 기적’을 이야기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솔로몬제도의 밤을 밝힌 첫 불빛이 한국의 손끝에서 켜졌다는 사실만큼은 오래도록 기억되지 않을까요. 언젠가 그곳에서 근무하게 될 미래의 한국수자원공사 직원에게도 미리 응원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