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뚫고 올라온 여린 잎들이 식탁 위에 오르는 계절, 봄나물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자연이 키워낸 보약이다.
제철을 맞아 영양은 물론 존재감까지 꽉 채운 주인공들을 소개한다.
글. 최행좌
입맛 저격수 ‘작은 마늘’ 달래
동그란 알뿌리는 꼭 알사탕을 닮았는데 향은 매콤하고 맛은 알싸하다. 줄기에서는 부추의 향이, 알뿌리에서는 마늘의 풍미가 동시에 느껴지는 신통방통한 채소다. 몸에 열을 돋우고 혈액순환을 돕는 효능 덕분에 ‘작은 마늘’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달래는 겨우내 둔해진 입맛을 번쩍 깨우는 대표적인 봄나물이다.
뽀얀 알뿌리와 가느다란 초록 줄기에는 봄기운이 통째로 담겨 있다. 작지만 존재감만큼은 ‘주연급’이다. 특유의 톡 쏘는 맛 덕분에 파, 부추, 마늘이 들어갈 자리에 대신 들어가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요리의 품격을 높여준다.
달래를 즐기는 방법은 무궁무진하지만, 역시 최고는 달래장이다. 송송 썬 달래에 간장과 참기름, 통깨만 더하면 향긋한 한 그릇이 완성된다. 갓 지은 밥에 한 숟갈 올려 슥슥 비벼 먹어도 좋고, 구운 김에 싸 먹으면 그야말로 별미다. 한 번 맛을 들이면 젓가락이 멈추기 힘들 정도로 중독성이 강하다. “봄이라 입맛이 없다”라는 소리를 쏙 들어가게 만드는 힘, 바로 달래의 마법이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채소 봄동
이름부터 설레는 봄동은 씹을수록 고소한 맛과 아삭한 식감이 일품인 봄의 시작을 알리는 채소다. 좋은 봄동을 고르는 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기지개를 켠 듯 잎이 시원하게 벌어지고, 겉잎은 싱싱한 초록빛을 띠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배추처럼 밑동이 단단하고 속살이 노란색일수록 단맛이 터져 나오는 ‘꿀맛’ 봄동일 확률이 높다.
봄동은 비타민 A와 무기질이 풍부한 대신 단백질과 지방이 부족하기 때문에 돼지고기 요리를 만났을 때 균형이 잘 맞다. 삼겹살을 싸 먹는 쌈으로, 입맛 돋우는 겉절이로도 궁합이 찰떡이다. 생으로 먹으면 아삭하고, 볶거나 튀겨도 영양 손실이 적어 조리법이 자유로운 것도 장점이다.
조리법도 세상 간편하다. 한입 크기로 뭉친 밥에 된장을 살짝 얹어 봄동으로 싸 먹으면 간단한 쌈밥이 되고, 봄동 잎을 부침옷을 입혀 노릇하게 부치면 향긋한 전이 된다. 잘게 다져 두부와 섞어 동그랑땡으로 만들어도 별미다. 손질은 쉽고 맛은 확실하니 나른한 봄날 식탁 위에서 자꾸만 손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단군신화부터 이어온 K-허브 쑥
향이 그윽한 쑥은『단군신화』에 등장할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지닌 허브다. 메마른 땅을 뚫고 가장 먼저 고개를 내미는 쑥은 봄의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채소이기도 하다. 솜털이 보송보송하게 올라온 어린 쑥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포근해지는 기분이 든다. 좋은 쑥을 고르고 싶다면 잎이 너무 크지 않고 줄기가 연하며, 향을 맡았을 때 코끝이 찡할 정도로 진한 것이 좋다. 그게 바로 봄의 정수를 품은 ‘찐’ 쑥이다.
쑥은 향이 강해 호불호가 갈릴 것 같지만, 의외로 어디든 잘 녹아든다. 떡으로 만들면 쫄깃한 식감과 향긋함이 배가되고, 말려서 차로 마시면 마음까지 차분해진다. 고기 요리의 잡내를 잡는 데도 일등 공신이며, 된장찌개 마지막에 한 줌 툭 넣으면 평범했던 찌개가 갑자기 ‘명품 전골’ 같은 포스를 낸다. 식탁 위에 초록색 생기와 건강한 에너지를 동시에 불어넣고 싶다면, 고민할 것 없이 쑥이 정답이다.
봄 식탁의 신스틸러 미나리
코끝을 간질이는 향긋한 풀내음, 듣기만 해도 침샘이 고이는 아삭한 식감! 봄 식탁의 주인공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단연 미나리다. 연한 줄기를 한입 베어 물면 입안 가득 은은한 향이 입맛을 돋운다. 잎이 싱싱한 초록빛을 띠고 줄기가 너무 굵지 않으며, 똑 꺾었을 때 수분이 촉촉하게 배어 나오면 합격! 그게 바로 신선한 미나리다.
청도미나리는 알아도 물미나리, 돌미나리는 의외로 헷갈릴 수 있다. 물미나리는 논에서, 돌미나리는 습지나 밭에서 자란다. 영화 <미나리>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 것도 돌미나리다. 조리법도 간단하다. 초고추장에 무쳐 상큼한 무침으로 먹거나, 부침가루를 입혀 전으로 부치면 향긋한 한 접시가 완성된다. 잘게 썰어 김밥이나 비빔밥에 넣어도 좋다. 한 단만 있어도 밥상 분위기를 확 바꿔 주는 미나리, 이 정도면 요리계의 조연급 주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