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는 자극적인 콘텐츠로 도파민을 충전하다가도 인간미 넘치는 콘텐츠를 보며 낭만을 찾고,
1분 내외의 숏폼에 몰입하는가 싶더니 1시간이 넘어가는 <풍향고>와 같은 콘텐츠를 ‘밥친구’
라며 찾아서 감상하기도 한다. 콘텐츠의 형식이나 장르만으로는 Z세대의 마음을 가늠할 수 없다.
요즘처럼 취향이 극도로 세분화된 초개인화 시대에는 선호하는 주제, 장르, 유형이 각자의 기호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에 선택 기준을 확인하는 지표로 삼기에는 더욱 어렵다.
하지만 Z세대의 선택을 받고 있는 콘텐츠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글. 김혜리 대학내일20대연구소 PR파트장
Z세대에게 선택받는 콘텐츠의 특징
현재 Z세대의 콘텐츠 소비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유튜브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조사에서도 20대가 최근 1년 이내 즐기게 된 콘텐츠로 ‘유튜브(60.0%, 1위)’를 꼽은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으며 20대 10명 중 8명(83.0%)은 유튜브 콘텐츠의 구간이나 재생 속도 조절, 가장 많이 다시 본 장면 등의 다양한 기능을 자주 이용하고 있었다.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템포에 맞게 자유자재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은 Z세대에게는 자연스럽고 익숙한 일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Z세대에게는 내가 어떤 속도로, 얼마나 오래, 언제 집중하고 어떤 대목에서는 흘려들을지 유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콘텐츠 선택의 핵심 기준이 되었다. Z세대가 24시간 콘텐츠와 함께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Z세대는 밥을 먹을 때도, 외출 준비를 할 때도, 공부할 때는 물론 심지어 잠잘 때까지도 콘텐츠가 일상의 틈을 빼곡히 채운다. 하지만 매 순간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것이 곧 매 순간 몰입한다는 뜻은 아니다. 20대가 유튜브를 즐겨보는 이유를 살펴봤을 때도 ‘따로 시간 내지 않고 틈틈이 즐길 수 있어서(40.0%)’가 1위를 차지했으며, ‘다른 여가 활동보다 저렴해서(33.3%)’, ‘계속 집중하거나 챙겨보지 않아도 되어서(32.5%)’가 뒤를 이었다.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되고, 끝까지 집중해서 보지 않아도 되는 등 부담이 적고, 몰입 시점과 정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콘텐츠를 선호하며, 일상의 빈틈을 채우듯 유연하게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야구장과 전시회에는 있는 ‘이것’
이러한 변화 속에서 유튜브나 SNS 콘텐츠를 비롯해 전시회, 박람회, 야구장 등의 오프라인 콘텐츠들이 Z세대의 선택을 받고 있다. ‘야구 엄청 길지 않나?’, ‘전시회도 몰입해서 보는 콘텐츠 아닌가?’라는 질문이 떠오르지만 앞선 콘텐츠들과 다른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야구의 경우 전체 경기 시간은 길지만 매 순간 모든 경기에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 야구를 보면서 음식을 먹거나 응원가를 부르고 친구와 수다를 떠는 등 다른 일과 병행할 수 있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전시도 비슷하다. 한 Z세대는 “친구와 함께 전시회에 가더라도 각자의 속도에 맞춰 따로 감상한다”라고 대답했다. 취향에 맞는 작품이 있다면 해당 작품에 더 오래 머물기도 하고, 내 입맛대로 동선을 짜서 관람할 수 있다. ‘정해진 흐름’에 따라가는 관람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템포’를 직접 설계하는 콘텐츠인 셈이다.
Z세대의 콘텐츠 소비 행태는 독서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독서’라고 하면 한 권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요즘 Z세대의 독서 방식은 조금 다르다. 최근 주목받는 ‘병렬 독서’가 대표적인 사례다.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번갈아 읽는 독서 방식으로,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완독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템포에 맞게 독서를 즐긴다. 흥미가 떨어지면 중간에 다른 책으로 갈아탈 수도 있다. 이처럼 소비 방식이 유연해지면서 책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완화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콘텐츠로 재인식되고 있다.
정리하면, 지금 선택받는 콘텐츠들의 공통점은 사용자가 자신의 흐름에 맞게 소비할 수 있고 몰입을 강요받기보다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기성세대에게 콘텐츠가 ‘집중해서 보는 것’이었다면 요즘 Z세대들은 마치 콘텐츠를 배경처럼 흘려보내듯 소비하는 것이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에서는 물처럼 유연하고 느슨하게 Z세대의 일상을 흐르는 콘텐츠를 ‘리퀴드 콘텐츠’라 정의했다.
Z세대가 콘텐츠를 ‘찍먹’하는 이유
콘텐츠 과잉의 시대, Z세대는 한정된 시간을 더 알차고 가치 있게 향유하기 위해 소비 방식을 설계하고 있다. 리퀴드 콘텐츠로 일상의 여백을 채우며 하나에 깊게 파고들기보다 넓고 가볍게 ‘찍먹’하고, 여러 가지를 동시에 병렬적으로 소비하며 빠르게 전환한다. 이는 콘텐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여러 분야를 라이트하게 덕질하는 겸덕 문화나 원데이 클래스·취향 기반 모임 같은 라이트한 경험, N잡이나 사이드 프로젝트 등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바운더리를 확장하는 방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변화 속도가 빠른 지금, Z세대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과거처럼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는 단일한 성공 방정식이나 정답이 없다. 직업과 삶의 방식은 분화되고, 기술과 트렌드는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며, 그 앞에 놓인 선택지 역시 훨씬 많아졌다. 이런 환경 속에서 Z세대는 ‘나’를 잘 이해하기 위한 과정에 많은 에너지를 쓴다. 수많은 선택지 중 더 나은 선택을 내리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뒤처지지 않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선명하게 아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Z세대가 콘텐츠와 경험을 라이트하고 유연한 방식으로 소비하는 것도 이와 맞닿아 있다. 하나에만 깊게 올인하기보다, 여러 가지를 가볍게 ‘찍먹’하며 나와 맞는 것을 찾아가는 전략인 셈이다.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수평적 확장을 추구하며 다양한 경험들로 일상을 채우는 Z세대의 선택을 받는 콘텐츠가 되기 위해서는 강한 몰입을 전제하기보다는 언제든 켰다가, 멈췄다가, 다시 이어볼 수 있는 ‘일상을 흐르는 콘텐츠’에 가까워져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