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 문명이 시작된 호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닿기 훨씬 전, 안데스 산맥에는 이미 거대한 제국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정교한 석조 도시 마추픽추를 남긴 잉카 문명이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문명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 출발점에는 한 호수가 등장한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한 티티카카 호수(Lake Titicaca)다. “이게 호수야, 바다야”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배가 오갈 정도로 넓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호수라는 타이틀도 지녔다. 잉카인들에게 이곳은 태양신 인티(Inti)의 숨결이라 여겨졌고, 호수는 오래도록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이곳에서 시작된 전설은 물결처럼 퍼져 나가 문명과 제국을 세운 씨앗이 되었다.
인티는 태양과 빛, 생명을 다스리는 전지전능한 존재였다. 어느 날 혼돈에 빠진 세상을 내려다본 그는 인간에게 문명을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티티카카 호수의 ‘이슬라 델 솔(Isla Del Sol)’에서 아들과 딸을 탄생시켰다. 바로 첫 잉카의 황제가 된 망코 카팍(Manco Cápac)과 그의 누이 마마 오클로(Mama Ocllo)다. 인티는 두 남매에게 황금지팡이를 건네며 특명을 내렸다.
“안데스 고원을 걸으며 이 지팡이로 땅을 찔러 보아라. 지팡이가 땅속으로 쑥 빨려 들어가는 곳이 너희가 세울 문명의 중심이 될 것이다.”
아버지의 말에 따라 남매는 호수의 황금빛 물결을 뒤로하고 길을 떠났다. 망코 카팍은 힘과 용기를, 마마 오클로는 지혜와 질서를 맡았다. 그들은 험준한 안데스 고원을 넘으며 농사짓는 법, 집을 짓는 법, 함께 살아가는 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수많은 산을 넘고 고난을 겪던 어느 날, 두 사람은 장엄한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계곡에 도착했다. 망코 카팍이 평소처럼 지팡이를 땅에 꽂는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스르륵” 하며 무거운 지팡이가 마치 솜사탕 속에 박히듯 부드럽게 땅 밑으로 사라진 것이다. 그곳이 바로 오늘날 잉카의 심장 ‘쿠스코(Cusco)’라 전해진다. ‘세계의 배꼽’이라는 이름처럼 이곳에서부터 잉카제국의 혈맥이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태양신의 또 다른 선물
인티의 선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인간에게 계절의 비밀도 알려 주고 싶었다. 그래서 하늘의 불씨를 세 조각으로 나누었다. 하나는 여름의 태양이 되어 곡식을 익게 하고, 하나는 겨울의 햇살이 되어 생명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 주었으며, 마지막 하나는 사람들의 심장 속에 남겨 두었다. 이름하여 ‘희망’. 잉카인들은 해가 가장 짧아지는 날이면 “태양이 힘 빠진 거 아닐까” 걱정하며 인티에게 제를 올렸고, 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면 “태양이 부활했다”라며 축제를 열었다. 그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인티 라이미(Inti Raymi)’ 축제다. 이때 사람들은 티티카카 호수에서 두 손을 들어 태양을 향해 인사한다. 황금빛 의상을 입은 사제들이 의식을 올리고, 풍요와 안녕을 기원한다. 북과 피리 소리가 울려 퍼지고, 춤과 노래가 호수 위로 퍼져 나간다.
“인티, 올해도 우리를 비춰 주세요.”
잉카의 후손들에게 티티카카 호수는 단순한 물의 공간이 아니다. 하늘의 태양이 땅에 문명을 내려보낸 출발점이자, 신화와 제국이 끊임없이 확장된 원점이다. 지금도 이들은 그 빛 속에서 인티의 기운을 느끼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