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과 파도가 만든 ‘바다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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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절리는 주로 화산암 지대에서 볼 수 있는 육각형 돌기둥 형태의 바위 지형이다. 뜨거운 용암이 식으며 수축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갈라져 만들어진다. 제주도와 울릉도, 포항 등지에서 볼 수 있지만 경주는 좀 더 특별하다.
경주 양남 주상절리군(이하 양남 주상절리)은 오랜 기간 해안 군사작전 지역으로 묶여 있어 ‘출입 금지’ 구역이었다가 2009년 군부대가 철수하면서 비로소 일반에게 개방되었다. 덕분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의 시간이 온전히 보존되었고, 여행자들은 그 세월의 결을 그대로 마주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검은 현무암 기둥들이 빼곡히 늘어선 풍경이다. 거대한 오르간 같기도 하고, 누군가 정성껏 쌓아 올린 성벽 같기도 하다. 위로 곧게 솟은 절리, 부채처럼 펼쳐진 절리, 한쪽으로 기울어진 절리, 바닥에 누운 듯한 절리까지 형태도 다채롭다. 말 그대로 ‘주상절리 박물관’이다.
대부분의 주상절리는 수직 기둥 형태로 발달한 데 비해 이곳은 수평 방향의 절리가 흔해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풍경을 만든다. 파도가 부딪힐 때마다 억겁의 시간 동안 깎이고 다듬어진 기묘한 조각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해 질 무렵 붉은 노을이 바다에 내려앉으면, 양남 주상절리는 마치 3D 입체 조형물처럼 또렷해지고, 자연이 빚은 조각 전시장이 펼쳐진다.
- 자연 조각상의 고요한 관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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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남 주상절리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단연 전망대다.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는 압도적인 높이로 다가오던 기둥들이 위에서 내려다보면 규칙과 리듬을 가진 무늬처럼 보인다. 자연이 만든 기하학적 패턴이 얼마나 정교한지 새삼 놀라게 되는 순간이다.
전망대 4층 창가는 특별한 설명이 없어도 오래 머물게 되는 자리다. 이곳은 단순히 높기만 한 게 아니라 부채꼴 주상절리를 가장 완벽한 각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명당이기 때문이다. 수십만 년 전 식어가던 용암이 동해의 파도와 바람에 다듬어지며 만들어낸 독특한 곡선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이 만든 작품’이라는 말이 절로 실감 난다.
그래서인지 사진을 몇 장 찍고 돌아서려다 한 번 더 바다를 바라보게 된다. 그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결국 한참을 서 있게 된다. 햇살이 바다 위에 부서져 윤슬을 만들 때면 셔터를 누르는 것도 잊은 채 그저 ‘바다멍’에 빠지게 된다.
- 파도 소리 따라 걷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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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남 주상절리를 곁에 두고 걸을 수 있는 길이 바로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이다. 경주시 하서리와 읍천리 사이 약 1.7㎞의 해안 산책로로, 전망대를 내려서는 순간부터 여행의 속도가 달라진다. 이 길에는 반드시 도착해야 할 종착지도, 놓치면 아쉬운 필수 코스도 없다. 대신 파도 소리가 길 전체의 배경음악이 된다. 나무 데크를 따라 걷다 보면 왼쪽에는 바다, 오른쪽에는 바위 절벽이 평행선처럼 이어진다. 발밑에서는 ‘탁, 탁’ 나무가 울리고, 앞에서는 ‘쏴아’ 파도가 밀려온다. 서로 다른 소리가 겹치며 묘한 리듬을 만든다.
양남 주상절리는 화려하지 않다. 대신 오래 바라볼 수 있는 얼굴을 하고 있다. 각진 바위와 하얀 파도,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길.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복잡했던 머릿속 생각들도 바위처럼 차분하게 정리되며 시야 또한 넓어진다. 어쩌면 마음의 각이 잡히는 기분이 들지도.
경주 양남 주상절리 전망대
- A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동해안로 498-13
- H 09:00~18:00(17시까지 입장)
- F 무료
- T 054-775-6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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