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은 때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가장 선명하게 만든다.
정보희 조향사는 울산의 바다와 숲, 사람과 이야기를 향으로 상상하고 현실로 풀어낸다.
코끝에 스치는 작은 향 하나가 어느새 울산이라는 도시의 풍경과 감정을 떠올리게 만든다.

코끝으로 만나는 울산
향을 맡는 순간 오래된 기억이 떠오를 때가 있다. 비 온 뒤 흙냄새, 바닷가의 짭조름한 공기, 막 세탁한 이불에서 나는 포근한 향처럼 말이다. 조향사 정보희 씨는 바로 그런 기억의 순간을 만드는 사람이다. 조향사는 여러 향료를 조합해 새로운 향을 만드는 향 전문가다. 향수뿐 아니라 화장품, 비누, 샴푸, 세제 등에 들어가는 향을 만들고 분석하는 일도 맡는다. 정보희 조향사의 작업은 여느 조향사와 다르다. 울산을 떠올리게 하는 로컬 향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조향은 친구 권유로 시작했어요. 머릿속으로 먼저 향을 상상한 뒤 실제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처음엔 단순히 흥미로 시작했지만 점점 향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특히 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의 감정과 기억을 오래 붙잡아둘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고. 결혼 후 울산에 살면서 이 도시만의 분위기를 향으로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외지인에게 울산은 공업도시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로 살아보니 바다와 숲,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였다고.
“울산은 생각보다 훨씬 감성적이고 문화적인 도시였어요. 그 분위기를 향으로 전하고 싶었죠.”
그가 울산향유고래향, 울산십리대숲향, 울산들장미향 등 울산을 떠올릴 수 있는 로컬 향을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좋은 향보다 중요한 건 스토리
정보희 조향사는 단순히 예쁘고 좋은 향을 만드는 게 아니다. 그는 향 안에 지역의 역사와 풍경, 스토리까지 담아낸다. 대표적인 향이 바로 ‘울산향유고래향’이다. 울산을 대표하는 상징인 고래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향이다. 그는 고래가 깊은 바다를 유영하는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엠버그리스 계열 향을 메인으로 사용했고, 여기에 바다의 시원함을 떠올릴 수 있도록 시트러스 향을 더했다.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느낌을 담고 싶었어요.”
향 설명을 듣고 맡아보면 정말 푸른 바다를 헤엄치는 돌고래가 떠오른다. 향 하나가 눈앞에 풍경을 펼쳐놓는 셈이다. 그는로컬 향을 만들 때 가장 먼저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조사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스토리를 어떤 향으로 표현할지 고민한다.
“울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계속 상상하게 돼요. 이야기가 만들어지면 이제 그걸 향으로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하죠.”
좋은 향을 만드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좋은 향료를 잘 조합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에 오래 남는 향은 다르다고 말한다.
“저는 모든 향에 생각과 이야기를 담으려고 해요.”
그래서인지 그의 향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도시를 기억하게 만드는 하나의 장면처럼 느껴진다. 울산에 가본 적 없는 사람도 향을 맡으면 어렴풋이 도시의 분위기를 상상하게 된다. 시원한 바다, 대숲의 바람, 오래된 산업도시의 묵직함까지 느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울산 한 번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슬며시 든다.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향기
정보희 조향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향을 통해 감정을 느꼈다고 말해줄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스토리가 향으로 느껴진다’, ‘위안이 됐다’라는 말을 들으면 정말 기뻐요.”
사람들과 향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좋아한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향과 기억이 다르다는 점이 재미있다고. 그래서 그는 향수가 단순한 치장의 개념으로만 소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향기를 통해 삶이 조금 더 풍요로워졌으면 좋겠어요.”
현재 울산 중구·남구·북구를 담은 향은 이미 완성됐고, 동구의 바위섬 슬도를 배경으로 조선 산업의 이야기를 표현한 향을 제작 중이다. 또 울산장생포수국향 출시도 앞두고 있다. 앞으로는 화장품 등 다양한 제품으로 울산의 향을 더 넓은 무대에 알리고 싶다는 꿈도 품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향은 단순한 향 이상의 의미라는 걸 알게 된다. 그가 만든 향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오래 각인되고, 그 향은 결국 울산이라는 도시를 다시 떠올리게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