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멍’의 시대입니다. 현대인에게 휴식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요즘, 불멍, 숲멍, 심지어는 비행기 항로를 바라보는 ‘비행기멍’까지 등장했습니다. 한 예술가의 참여형 퍼포먼스로 시작했던 ’멍 때리기 대회’는 스케일을 점점 키워 해외로 수출되기까지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선호하는 건 ‘물멍’입니다. 불을 피울 필요 없이, 근처 물가를 찾아 햇살 아래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결을 보고 있으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조금씩 고요해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물가를 찾는 이유는 단순히 기분 탓일까요, 아니면 과학적인 이유가 있는 걸까요? 본격적인 여름 비가 흙탕물을 일으키기 전, 일 년 중 물빛이 가장 투명한 6월에 우리가 물멍을 떠나야 하는 이유를 짚어봅니다.

뇌를 새로고침하는 효과, ‘블루 마인드’
현대인의 뇌는 늘 ‘레드 마인드(Red Mind)’ 상태입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스마트폰 알림, 휴일에도 체크해야 하는 빽빽한 업무 일정, 집에서도 처리해야 할 잡무들은 우리 뇌를 계속해서 긴장 상태로 몰아넣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있어도 피곤이 가시지 않는 이유, 머릿속 한 켠에선 여~전히 정보를 처리하느라 열일 중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해양생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월러스 니콜스 교수는 본인의 저서『블루 마인드(Blue Mind)』에서 이 같은 상태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으로 ‘물멍’을 제시합니다. 물 근처에 있을 때 우리 뇌가 이완되고 평온해진다는 겁니다.

이론에 따르면, 우선 해변가나 수변 환경이 코르티솔과 심박수를 낮추는 효과를 줍니다. 또, 강이나 바다의 물결은 직선적인 1차원이나 평면의 2차원이 아니라, 그 중간 영역인 소수점 차원의 프랙털 패턴으로 나타납니다. 인간은 이 같은 1.3~1.5 정도의 프랙털 차원에서 심리적 안정과 편안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생겼다가 사라지길 반복하는 파도와 물결의 프랙털적 리듬, 그것이 만들어내는 일정한 듯 하면서도 미세하게 변하는 백색 소음. 우리 뇌는 이를 ‘예측 가능한 안전한 자극’으로 받아들여, 자연스러운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물멍은 뇌가 외부 자극으로부터 해방되어 새로고침을 하는 시간인 겁니다.
6월, 일 년 중 가장 투명한 물결을 만나는 골든타임
그렇다면 왜 하필 6월일까요? 여기에는 계절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첫째는 ‘투명도’입니다. 6월 말부터 8월까지 본격적인 장마와 집중호우가 시작되면 상류에서 유입된 흙탕물과 부유물로 인해 강과 호수는 탁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6월 말부터 시작되는 장마 전까지는 큰 비가 오기 전이라, 일 년 중 물이 가장 맑고 투명합니다. 유량이나 저수량이 적지도 않죠. 해가 조금씩 넘어가는 시간에 물가를 찾는다면 햇빛이 수면 위에서 부서지며 반짝이는 윤슬도 선명하게 감상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두 번째는 ‘짙어지는 녹음’입니다. 6월은 갓 돋아난 신록이 점차 짙어지는 달입니다. 파란색의 수면 위로 수변의 짙은 초록색이 반사되는 풍경은 시각적 청량함을 극대화합니다. 또, 무더위로 인한 녹조가 본격화되기 전이라, 가장 깨끗하고 순수한 수변 환경을 즐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초여름의 적당한 습도는 물소리를 더욱 가깝고 선명하게 전달합니다.
정서적 인프라로서의 댐과 호수
유럽은 10여 년 전부터 녹지와 수변 공간을 통합한 블루-그린 인프라를 도입하면서 ‘물 기반 공간’을 의미하는 ‘블루 스페이스(Blue Space)’ 개념을 도시 정책에 반영해 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댐과 호수는 이미 단순한 산업 시설을 넘어 시민들에게 정서적 인프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가슴이 뻥 뚫리는 소양강댐의 개방감을 느끼거나, 대청호 주변의 산책로를 조용히 걷다 보면, 일상의 번잡함은 물 밑으로 가라앉고, 그 자리에 새로운 에너지와 창의성이 채워지는 듯 합니다.

그리고 물멍을 하러 갔다가 강바닥만 보고 오지 않으려면 한 가지 고려해야 할 게 있습니다. 목적지가 ‘다목적댐’인지를 꼭 확인해야 합니다. ‘홍수조절용댐’은 평소엔 물을 흘려보내며 비워두었다가 홍수 조절 시에만 물을 가둬 댐 안의 물이 차오르기 때문이죠. 얼마 전 취재차 찾았던 연천 한탄강댐은 강바닥이 훤히 드러나 홍수기 대비 물그릇이 확보된 상태였습니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이번 주말, 눈앞에 기분 좋은 푸른 물결이 가득하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