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한 선비에 비유할 정도로 단정하고 말간 얼굴, 들여다보면 진흙탕 속에 뿌리를 내렸지만 그 속에서 오히려 물을 정화하는 연꽃과 수련.
여름빛을 받아 어느 때보다 환한 얼굴을 꽃피운 수생식물의 천국, 양평 세미원이다.
글. 강시내 사진. 박갑순
물과 꽃이 준 ‘정화’라는 선물
남한강과 북한강 두 물줄기가 만나고, 팔당호가 감싸 안은 곳에 위치한 꽃들의 정원. 양평 세미원은 물과 꽃이 빚어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한다. 이곳을 모두 둘러보고 나설 때면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는 의미를 담은 ‘세미원’의 이름이 꼭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금은 꽃과 물로 가득한 이 정원이 과거 상습 수해 지역이자 상류에서 떠내려오는 쓰레기로 수질 오염 문제가 있었던 곳이라는 점이다. 이때 정부와 민간단체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찾은 해결 방안은 바로 ‘수생식물’이었다. 수질 정화 기능을 하는 수생식물들로 자연정화공원으로 가꾸자는 목표는 긴 공사 끝에 경기도 제1호 지방정원으로 탄생했다. 덕분에 지금 세미원의 연못은 맑고 깨끗한 물빛을 유지하며 사람들에게 편안한 풍경을 선물하고 있다.
* 관수세심 관화미심(觀水洗心 觀花美心):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
역사의 다리는 이야기를 잇고
세미원이 사랑받는 건 정원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정원을 둘러싼 풍경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도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세미원에 입장해 남동쪽 강가 끝으로 내려가면 나타나는 배다리는 그 역사를 알고 건너면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작은 배 44척을 일렬로 연결하고, 그 위에 상판을 얹어 만든 이 독특한 다리는 다산 정약용이 조선 22대 왕인 정조를 위해 설계한 것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당시 정조는 뒤주에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긴 후 매년 봄마다 대규모 행차를 했는데, 한강을 건널 때마다 수많은 배를 동원하는 등 너무 큰 수고와 비용이 들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약용은 배 여러 척을 이어 만든 ‘배다리’를 고안했다. 현재 세미원에 있는 배다리는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그 시절, 이곳을 지나던 정조를 떠올리며 천천히 다리를 건너다 보면 양평의 또 다른 명소인 ‘두물머리’에 닿게 된다.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
세미원은 전체 면적이 약 20만 7천㎡(약 6만 2천 평)에 달하는 거대한 정원이지만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아주 짧고 간단하다. ‘자연과 인간은 둘이 아닌 하나’라는 것. 정문으로 들어서 관람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태극 문양의 문, ‘불이문(不二門)’은 바로 그 뜻을 품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수련으로 알려진 빅토리아 수련이 있는 연못과 선조들이 풍류를 즐기던 전통 정원시설을 재현한 유상곡수, 연꽃박물관, 세심로 등 발길 닿는 모든 곳에 자연이 살아 숨쉰다. 이중에서 세미원의 가장 큰 자랑은 역시 연못과 연꽃 정원이다. 하얀 연꽃이 수려한 백련지, 은은한 분홍빛이 우아한 홍련지는 한 폭의 그림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꿈같은 풍광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특히 연꽃의 개화는 보통 7월 초순부터 8월 하순까지여서 바로 지금부터가 세미원의 연꽃을 보기에 가장 제격인 때다. 연꽃은 새벽부터 피기 시작해 오전에 가장 활짝 열리고, 오후가 되면 꽃잎을 다시 오므리는 특징이 있으니 오전에 방문하면 더욱 좋다.
또 세계적인 연꽃 연구가 페리 슬로컴(Perry D. Slocum) 박사의 이름을 딴 페리기념연못, ‘수련’하면 떠오르는 프랑스의 화가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가득한 정원’을 재현한 ‘사랑의 연못’도 있다. 날씨, 계절, 빛에 따라 달라지는 연못의 수련을 담아내기 위해 죽기 전까지 30여 년을 수련과 연못의 빛을 담아낸 그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라면 더 반가울 것이다.
이외에도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를 정원으로 재현한 ‘세한정’, 조선시대 온실을 재현한 ‘상춘원’, 세계 유일의 연꽃 테마 박물관, 장독대로 만든 장독대분수까지 다양한 볼거리를 즐기다 보면 이른 더위도 잊은 채 수많은 인증샷을 남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