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법
청주랜드동물원은 한때 많은 종을 전시하는 일반적인 동물원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구조와 치료가 필요한 동물들에게 더 넓은 공간과 더 나은 삶을 건네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는 25년째 현장을 지켜온 김정호 진료사육팀장이 있다.
그는 2001년부터 청주랜드동물원에서 수의사로 일해 왔다. 대학 시절 실습을 왔던 인연이 출발점이었지만, 그가 끝내 이곳을 택한 이유는 보호자가 없는 야생동물에 대한 관심과 책임감 때문이었다.
“졸업 당시에는 이 일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제가 충북대 수의대를 나왔는데, 그중 야생동물 수의사가 처음이었거든요. 원래 동물을 좋아했는데, 야생동물은 특히 마음이 가더라고요. 반려동물은 보호자가 있어서 돈을 내고 치료받지만, 야생동물은 다치면 그냥 죽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김정호 팀장이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청주랜드동물원은 일반적인 동물원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새끼 때 구조되어 사람 손을 타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동물, 치료와 연구가 필요한 동물들을 받아들이는 보호소이자 치료소의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기후에너지환경부의 ‘거점 동물원’으로 지정된 이후에는 다른 지역 야생동물 구조와 치료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강원도나 대구 등에서 구조된 동물들을 받아 치료하고, 천연기념물 동물치료소와 동물보존관을 통해 재활과 방사까지 책임지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췄다. 이는 야생동물을 단순히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바라보기에 이룰 수 있는 변화였다.
마취총 너머의 책임
청주랜드동물원의 팀장으로서 마취와 외과를 담당하는 그는 야생동물 진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마취’라고 말한다. 야생동물의 진료는 마취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야생동물 구조도 마찬가지다. 가장 안전한 구조는 수의사가 직접 마취총을 쏘는 방식이다.
“사람들은 마취총만 있으면 야생동물을 안전하게 포획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람을 수술할 때 마취가 중요하듯,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구조나 포획 과정에서 마취로 인해 야생동물이 죽는 경우도 많아요.”
실제로 2023년, 대구의 한 동물원에서 침팬지 2마리가 탈출한 사건이 발생했고, 이 중 수컷 ‘루디’는 마취총을 맞은 뒤 회복 과정에서 기도 폐쇄로 질식사하기도 했다.
야생동물의 진료는 마취에서 시작하고, 그 과정에는 약물, 장비, 인력, 응급 대응까지 정교한 준비가 함께 따라야 한다. 대전 오월드 늑구 구조 현장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늑구를 구하기 위해 전국에서 달려온 수의사들 가운데 김정호 팀장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앰뷸런스를 직접 몰고 현장에 도착했고, 전국에서 10여 명의 야생동물 수의사들이 휴일과 개인 시간을 포기하고 달려왔다. 네다섯 명이 마취총을 들고 산을 뛰어다니며, 포획·마취·안정화까지 한마음으로 움직였다. 늑구를 안전하게 포획한 뒤, 김정호 팀장은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안전하게 잡았으니, 이제는 늑구가 왜 나갔는지 생각해 볼 시간입니다.”
그는 수십 년의 수의사 생활을 통해 동물들의 행동을 관찰하며 깨달았다. 늑대는 무리 동물로서 계급과 위계질서가 뚜렷하고, 성숙기 청소년 늑대라면 독립을 시도하거나 무리 내 압박을 피해 나갈 수 있다.
“저희가 5마리 늑대를 키워봤는데, 한 마리는 왕따를 당하기도 하더라고요.”
원숭이 사례도 언급했다. 남미 원숭이들은 알파 수컷만 번식할 수 있는 계급사회를 이루는데, 겨울 추위에도 따뜻한 실내에 있는 알파 수컷을 피해 한 개체가 밖에서 얼어 죽기를 택한 적이 있었다. 그는 “야생동물이 탈주했을 때, 동물의 관점에서 그 마음을 헤아리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단순히 시설 탓만 하기보다, 동물의 생태와 심리를 먼저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랑하기에 필요한 거리
그는 동물을 사랑한다는 말이 단지 감정의 크기를 뜻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진짜 사랑은 그 동물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보고, 자연에서 하던 행동을 최대한 비슷하게라도 할 수 있게 돕는 일에 가깝다. 나무를 타는 동물에게는 오를 곳을, 물에서 노는 동물에게는 물의 시간을, 몸이 불편한 동물에게는 고통을 덜어 줄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하지만 야생동물을 사랑해서 이 길을 택했기에, 오히려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하는 딜레마가 있기도 하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물을 마취해야 할 때,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라는 배신감 가득한 눈빛을 받으면 정말 마음이 아파요. 또, 치료법이 없어서 고통받을 때 안락사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있는데, 저도 사람인지라 정이 든 동물을 보내줄 때 망설이게 되더라고요.”
그는 수의사라는 입장에서 더 나은 치료를 위해 거리 두는 법을 배웠다. 정을 줄수록 객관적인 판단이 흐려지고, 동물에게 최선의 순간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더 냉정해야 하는, 그 모순 속에서 그는 오늘도 동물과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