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패션의 경쟁력은 ‘한국적’이라는 수식보다, 세계가 원하는 새로움을 빠르게 감지하고 자기 언어로 번역해 내는 감각에서 나온다.
트렌드를 읽는 속도,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손끝, 그리고 무대 위에서 서사로 완성하는 연출력까지.
이청청 디자이너가 글로벌 패션위크를 오가며 확장해 온 존재감은 K-패션이 지금 왜 주목받는지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글. 강지형 사진. 황지현
디자인으로 증명한 글로벌 브랜드 론칭
손끝으로 원단의 결을 읽고, 머릿속으로 실루엣의 균형을 그린다. 그리고 마지막엔 정확한 재단, 한 땀의 스티치로 작업대 위에서 완성한다. 이청청 디자이너가 옷을 만드는 과정은 이토록 정교하고 치열하다. 그를 패션디자이너의 길로 이끈 건 단순했다.
“내 손으로 글로벌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어요.” 꿈이 컸고, 방향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미소 지었다.
“처음에는 패션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배우면 배울수록 직접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입어보면 얼마나 재밌을까 하는 호기심이 시작이었죠.”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예술대학교에서 아트&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2010년 런던패션위크에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2013년 ‘라이(LIE)’를 론칭한 이후, 그의 시선은 줄곧 세계를 향했다. 뉴욕, 파리, 런던, 중국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패션쇼를 선보이며 무대를 넓혔다. 그에게 무대는 처음부터 ‘글로벌’이었다.
“2012년 여름이었죠. 파리 ‘Who’s Next’ 전시회에 참가해 2013 S/S 컬렉션을 선보였는데, 선주문 방식으로 생산이 이어졌어요. LIE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해외 시장에서 통한다는 걸 확인한 순간이었죠.”
이후 미국, 유럽, 중동, 아시아로 세일즈를 이어갔고, 해외에서 그의 이름이 빠르게 알려졌다. 뉴욕, 파리, 런던 등 세계 4대 패션위크에서 K-패션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마음을 움직이는 ‘아이디어’의 힘
이청청 디자이너에게 패션은 운명과도 같았다. “패션 디자인에 매료된 데는 아버지(이상봉 디자이너)의 영향이 컸어요. 아버지의 패션쇼장에서 느꼈던 그 심장 뛰는 에너지를 잊을 수 없거든요. 무대 위 라이브 쇼가 주는 드라마틱한 감동을 보며 ‘패션쇼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이라는 걸 깨달았죠.”
하지만 거장의 아들로 시작한다는 것이 늘 화려한 것만은 아니었다. ‘국내 1세대 디자이너 이상봉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은 때로 무거운 부담이 되어 그를 눌렀다. 하지만 그는 정면 돌파를 택했다. 실력으로 증명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첫 쇼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에야 그는 비로소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이 세상에 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가 아버지 곁에서 배운 디자이너의 자세는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바로 창의적인 아이디어, 노력, 그리고 열정이다.
“물론 타고난 재능의 차이는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 간극을 메우는 건 결국 노력과 열정이에요. 그리고 그 끝에서 가장 빛나는 건 ‘아이디어’예요. 디자인은 다양한 요소를 결합해 전에 없던 것을 만드는 일인데, 여기에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는 창의성이야말로 디자이너가 가진 가장 큰 도구라고 생각하거든요.”
LIE X INSOOTH
K-패션이 세계적인 파워를 갖는 이유
요즘 이청청 디자이너는 ‘한국적인 것’에 대해 많이 고민한다. 다만 전통 요소를 무조건 모티프로 가져오진 않는다. 패션은 본질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대신 방식이 재미있다. 외국인의 눈에는 낯설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끌어온다. 한글, 한복의 형태처럼 ‘낯선 언어’와 ‘낯선 실루엣’을 동시대 감각으로 번역해 새로움을 더한다. 옷이야말로 ‘나를 표현하는 가장 자유로운 방법’이 되었으면 한다는 것. 라이를 ‘Life Is an Expression(인생은 표현이다)’ 로 정의한 이유도 여기 있다. K-POP과 K-콘텐츠의 인기에 힘입어 K-패션도 주목받고 있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들이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게 이를 반증하죠. 한국 브랜드가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어요.”
실제로 2025 F/W 패션위크에서 선보인 견고하고 참신한 ‘GLACIER(빙하)’ 컬렉션은 아웃도어 전문 브랜드 ‘INSOOTH (인수스)’와의 합작이다. 혼자서 모든 걸 하려 하기보다, 잘하는 세계와 손잡는 방식이다.
K-패션의 파워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유행이 아니다. 세계가 원하는 ‘새로움’을 읽는 속도, 문화와 트렌드를 번역하는 감각. 이청청 디자이너의 작업 방식은 그 힘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확장되는지를 보여준다. K-컬처의 흐름 속에서 K-패션은 더 멀리 갈 준비를 이미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