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태어난 신, 뇨르드
항해술이 뛰어났던 바이킹은 발트해와 북해는 물론, 지중해와 흑해까지 바닷길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배를 띄워 세상을 누볐다. 그런데 그들이 바다로 나설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신이 있다. 바다와 바람의 신, 뇨르드(Njord)였다. 뇨르드는 북유럽 신화에서 바다와 바람, 항해와 풍요를 다스리는 신이었다. 그는 번개처럼 요란하게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물결처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인간의 삶을 붙든다. 그는 본래 자연의 풍요를 상징하는 바니르에 속한 존재로 전해진다. 바니르의 신들은 땅의 결실과 바다의 먹거리, 삶의 ‘지속’을 관장했다. 그래서 뇨르드의 탄생은 곧 생존의 약속이었다. 북쪽 바다는 풍요를 주지만 그만큼 차갑고 거셌다.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바다를 정복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바다와 타협하고, 때를 기다렸다. 뇨르드는 그런 현실적인 태도를 보여준 존재였다.
북유럽 신화의 기록인 『에다』에 따르면, 세상에는 풍요와 지혜를 상징하는 바니르 신족과 생명과 사랑을 관장하는 애시르 신족이 존재했다. 두 신족은 한때 세상을 뒤흔들 정도로 격렬한 전쟁을 치렀으나, 어느 쪽도 상대를 완전히 굴복시키지는 못했다. 결국 이들은 긴 싸움 끝에 서로 인질을 교환하며 평화를 맺기로 합의했다. 이때 바니르 신족이었던 뇨르드가 애시르 신족의 땅인 아스가르드로 향하게 됐다. 그가 지닌 폭풍을 다스리는 거대한 힘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고귀한 담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뇨르드는 이곳에서 바이킹이 굶지 않도록 세상을 살폈다고 전해진다. 이들이 바다로 나가면 바람으로 돛을 밀어주고, 잔잔한 파도로 길을 열어 무역과 교역으로 살아가도록 도왔다. 그가 주는 것은 ‘정복의 기적’이 아니라 ‘생존의 가능성’이었다.
뇨르드가 가진 능력은 바다를 뒤엎는 폭발력이 아니다. 그의 힘은 순풍과 통로에 있다. 바다 한가운데서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은 거대한 기적이 아니라, 파도 사이를 지나갈 작은 틈, 돛을 밀어줄 한 번의 바람, 배가 뒤집히지 않을 정도의 균형이다. 뇨르드는 바로 그 ‘작지만 결정적인 것’을 다뤘다. 그래서 바이킹들은 출항 전, 전리품을 꿈꾸기보다 먼저 뇨르드의 이름을 불렀다. 그에게 바라는 것은 승전보가 아니라 무사귀환이었다.
‘틈’을 만드는 뇨르드의 힘
뇨르드를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장면은 그가 바다를 조율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폭풍이 몰려오면 그는 폭풍을 없애기보다 방향을 바꾼다. 파도가 높아지면 파도를 낮추기보다 배가 지나갈 길을 만든다. 즉 뇨르드는 자연을 지배하지 않고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다시 맞춘다. 그가 보여주는 힘은 ‘더 강해지는 힘’이 아니라 ‘살아남는 힘’이었다.
이런 성격은 그의 삶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뇨르드는 산과 눈의 여신 스카디(Skathi)와 결혼했는데, 두 사람은 ‘9일은 남편의 집, 9일은 아내의 집’을 오가며 지내기로 한다. 문제는 취향이 너무 극과 극이었다는 것. 스카디는 산의 정적과 차가운 공기를 사랑했고, 뇨르드는 갈매기 울음과 짠 바다의 숨결을 사랑했다. 서로를 존중해 보려 했지만, 결국 둘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이 이야기는 뇨르드가 ‘억지로 버티는 힘’보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힘’을 상징한다. 돌아온다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오래 가기 위한 선택이라는 걸.
결국 뇨르드의 능력이 말하는 ‘힘’은 분명하다. 힘은 세상을 흔드는 소리가 아니라, 내일도 항해할 수 있게 하는 조건이다. 거친 바다 앞에서 멈출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결국 돌아올 줄 아는 힘. 뇨르드는 그 힘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