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머문 자리

고요한 물, 강렬한 색

루이스 바라간의 건축

강렬한 색의 벽과 그 위로 쏟아지는 빛,
고요하게 머물다 힘차게 떨어지는 물.
멕시코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은 물과 빛,
색을 어우러지게 하며
건축을 감각의 공간으로 바꾸었다.
그의 건축에서 물은 공간에 표정과 움직임을 더하는 또 하나의 재료였다.

글. 편집실

산 크리스토발 마구간 ⓒ Šarūnas Burdulis

물과 색이 만나는 풍경

높은 분홍색 벽 아래로 푸른 물이 펼쳐지고, 벽을 가로지른 수로에서는 물이 힘차게 떨어진다. 멕시코시티 외곽에 자리한 ‘산 크리스토발 마구간(Cuadra San Cristóbal)’은 바라간의 건축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택과 마구간, 넓은 수공간이 어우러진 이곳에서는 선명한 색과 단순한 형태, 빛과 물이 만나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든다.
산 크리스토발 마구간은 인근의 ‘연인들의 분수(Fuente de los Amantes)’와 함께 바라간이 1960년대 설계한 공간 ‘로스 클루베스(Los Clubes)’ 프로젝트의 일부다. 승마 단지이자 주거 공간으로 계획된 만큼 물 역시 단순한 장식에 머물지 않았다. 연인들의 분수는 말을 탄 채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산 크리스토발에서는 넓은 수면과 힘차게 떨어지는 물줄기가 공간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바라간은 물을 통해 공간에 서로 다른 표정을 만들었다. 잔잔한 수면은 벽과 하늘, 빛을 비추며 공간을 넓어 보이게 하고, 떨어지는 물줄기는 공간에 생생함을 더했다. 분홍빛과 붉은빛의 벽은 태양의 기울기에 따라 색조를 달리하고, 다시 수면에 비치며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단단한 벽과 유연한 물, 강렬한 색과 변화하는 빛이 대비되면서 바라간만의 독특한 공간이 완성된 것이다.

시간을 넘어 이어진 건축 언어

그의 건축 언어는 사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2023년 멕시코 과달라하라에 조성된 ‘루이스 바라간 광장(Plaza Luis Barragán)’에는 그가 1970년대 구상했지만 생전에 실현하지 못했던 조형물 ‘엘 팔로마르(El Palomar)’가 세워졌다. 원래 과달라하라의 엘 팔로마르 주거단지에 설치하기 위해 계획했으나 경제적인 이유로 실현되지 못한 작품으로, 수십 년이 흐른 뒤 바라간이 남긴 스케치와 자료를 바탕으로 비로소 현실의 공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높이 45m에 이르는 엘 팔로마르는 단순하면서도 대담한 기하학적 형태와 강렬한 테라코타색이 특징이다. 푸른 하늘과 나무를 배경으로 솟은 거대한 구조물은 바라간 특유의 색채와 조형 감각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기단부에는 길게 뻗은 수공간이 자리해 단단한 구조물과 대비를 이루며, 빛과 주변 풍경을 담아낸다. 2023년 완성된 이 조형물은 바라간이 남긴 원안의 색과 규모를 존중해 구현됐다. 생전에 실현되지 못했던 구상이 수십 년의 시간을 지나 그의 고향 과달라하라에서 새로운 도시 풍경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산 크리스토발의 넓은 수면과 힘차게 떨어지는 물줄기, 엘 팔로마르의 강렬한 색채와 수공간까지. 바라간의 건축에서 물과 색, 빛은 공간의 인상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물은 주변의 색과 빛을 비추고, 때로는 소리와 움직임을 더하며 공간에 새로운 표정을 만든다. 서로 다른 요소가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을 이루는 것, 그 속에 바라간 건축이 지닌 특별한 매력이 있다.

엘 팔로마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