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그린 풍경

한 걸음 더 깊이, 안동

오래된 이야기를 품은 다리부터 예술이 깃든 마을, 강을 건너야 닿는 작은 마을까지.
안동댐 준공 50주년을 맞은 안동에서 걸을수록 깊어지는 풍경과 시간을 만났다.

글. 임혜선    사진. 김은주

월영교

고요한 수면 위로 이어지는 마음 잔잔한 낙동강 위로 그리움이 길게 이어지고
고요한 수면 사이로 물결과 바람의 소리가 번져갑니다.
월영교 위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안동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세요.

영상을 재생하시면 월영교 분수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월영교

다리에 머문 애틋함

낙동강 물길이 휘감는 안동시 상아동. 강 양쪽을 잇는 목책교 위로 올라서자 탁 트인 물길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물결 위로 산자락과 하늘이 포개지고, 강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이 옷깃을 가볍게 스친다. 잠시 걸음을 멈추면 물과 바람의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바쁜 일상에서는 좀처럼 귀 기울이지 못했던 소리다.
국내에서 가장 긴 목책교인 월영교. 달이 비친다는 뜻의 ‘월영(月映)’에는 안동의 오랜 시간이 담겨 있다. 월영교 북쪽에 자리한 안동댐 건설로 위치를 옮긴 월영대와 월곡면 등 옛 지명에서 따온 이름이다.
다리의 형태에도 안동에서 전해진 애틋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1998년 고성 이씨 문중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미투리*와 ‘원이 엄마의 편지’가 주인공이다. 남편의 쾌유를 바라며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을 섞어 미투리를 만들었지만, 끝내 남편을 잃은 뒤 “나는 꿈에 자네 보리라 믿고 있노이다. 몰래 와서 보여주소”라며 절절한 마음을 꾹꾹 눌러 쓴 편지는 오랜 세월을 건너 오늘날까지 깊은 울림을 전한다. 월영교는 이 미투리를 형상화한 다리로, 다리 위를 걷는 시간에도 한 사람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겹쳐진다.

* 삼이나 노끈 등의 재료를 가늘게 꼬아 만든 전통 신발

예끼마을

예술을 지나 물길 위로

안동호를 따라 북쪽으로 향하면 글자 그대로 색다른 마을에 닿는다. 골목마다 지나칠 수 없는 트릭아트와 익살스러운 벽화가 가득한 곳. 이름부터 흥겨운 ‘예끼마을’이다. 예끼마을은 안동댐 건설로 삶의 터전을 옮긴 주민들이 새롭게 자리 잡은 도산면 서부리에 예술의 색을 더해 조성한 마을이다.
실제로 주민들이 생활하는 곳이라 여느 관광지와 같은 소란스러움은 없지만, 트릭아트의 세계로 풍덩 빠진 듯 사진을 찍는 이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마을 산책을 마쳤다면 이번에는 물가로 내려갈 차례다. 안동호 가장자리에 다다르면 물 위로 길게 뻗은 선성수상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안동 선비순례길의 일부인 이 길은 물 위에 뜬 부교 형태로 조성돼 있어 호수 가까이에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잔잔한 호수가 발아래 펼쳐지고, 고개를 들면 물 건너 산자락이 겹겹이 이어진다. 마을 언덕에서 내려다보던 안동호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발밑에서 미세하게 전해지는 부교의 움직임, 수면을 스치는 바람과 잔잔한 물결 소리. 화려한 볼거리가 없어도 그 자체로 충분하다. 물 가까이에서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 안동호의 넓이와 깊이가 몸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선성수상길

예끼마을

발밑에서 미세하게 전해지는 부교의 움직임, 수면을 스치는 바람과 잔잔한 물결 소리.
화려한 볼거리가 없어도 그 자체로 충분하다.

맹개마을로 진입 중인 트랙터

트랙터 타고 찾은 숨은 풍경

길이 끝나는 곳에서 오히려 특별한 여행이 시작되기도 한다.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자리한 맹개마을이 그렇다.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뒤로는 청량산 자락이 둘러싼 이곳은 흔히 ‘육지 속 섬’이라 불린다. 지난해 6월 징검다리가 생겼지만, 그전까지 유일한 진입 방법이었던 트랙터 탑승은 여전히 많은 방문자가 놓치지 않는 이곳만의 특별한 경험이다. 덜컹거리는 트랙터를 타고 얕은 물길을 건너는 순간부터 평범한 여행과는 조금 다른 여행이 시작된다.
강 건너 길을 따라 왼쪽으로 돌면 산자락에 숨어 있던 풍경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청량산의 봉우리와 기암절벽은 병풍처럼 마을을 감싸고, 탐스럽게 핀 메밀꽃은 마을 전체를 소복이 덮고 있다. 궂은 길을 마다하지 않은 방문객을 위한 숙소의 지붕은 어릴 적 봤던 동화 속 집처럼 붉은색이다. 바쁘게 찾아다닐 필요 없이, 마을을 천천히 거닐며 눈에 담는 모든 것이 특별한 풍경이다. 초가을의 햇살 아래 어우러진 이 그림 같은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 일부러 강을 건너온 시간이 아깝지 않다.
월영교에서 시작해 안동호 위를 걷고, 마침내 낙동강을 건너 작은 마을에 닿았다. 돌이켜보면 이번 여행의 곁에는 언제나 물이 있었다. 때로는 도시의 풍경을 만들고, 때로는 오래된 마을의 시간을 품으며 사람들의 삶 곁을 흘러온 물. 그 물길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안동이 품고 있는 시간과 풍경도 조금씩 가까워진다.

맹개마을

물길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안동이 품고 있는 시간과 풍경도
조금씩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