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강수량만을 고려하던
기존 가뭄 지수에서 벗어나
기온과 증발산량을 반영하는 지표를 도입해
더욱 정밀한
체계를 갖춰야 한다.
남부지방에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던 8월, 위성 스타트업 텔레픽스가
포착한 경남 창녕 옥천저수지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저수지
대부분이 바닥을 드러냈고, 취수구 인근에만 약간의 물이
남아있었다. 여름이 시작될 때만 해도 옥천저수지의 저수율은
68.7%에 달했지만, 8월 초가 되자 1.9%까지 떨어졌다. 불과 두 달여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렇듯 최근 가뭄의 양상은 과거와 명확히 달라지고 있다. 장기간
비가 오지 않아 천천히 메말라가던 전통적인 가뭄과 달리, 여름철
극심한 폭염과 함께 수주 안에 급격히 물이 고갈되는
‘돌발가뭄(Flash Drought)’이 일상화됐다.
극심한 더위에 더 많은 수분 뺏겨
돌발가뭄이란 강수 부족과 고온으로 인한 증발량 증가가 겹치면서
짧은 기간에 수자원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현상이다. 지난해 강원
영동 지역이 겪은 극심한 물 부족 현상이 대표적인 돌발가뭄 사례다.
당시 장마 직후 지속된 폭염으로 인해 강릉 시민의 식수원인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급감했다. 공공수영장은 문을 닫았고, 화장실
수압도 절반으로 낮춰야 했다. 당시 강릉 지역의 강수량 대비
증발량은 평년의 3배 이상으로 치솟았다. 극심한 더위로 인해
하늘에서 더 많은 수분을 뺏어갔다는 뜻이다.
올해 경남 지역 역시 40도가 넘는 극한폭염과 ‘마른장마’가 겹치면서
저수지와 댐의 물이 빠르게 줄었다. 국가소방동원령이 발령됐고,
소방차와 군 병력까지 투입돼 비상 급수 작전에 나섰다. 이제 가뭄은
천천히 다가오는 재난이 아닌, 예고 없이 불어닥치는 기습적인
기후재앙이 됐다.
돌발가뭄 리스크의 증가
더 큰 문제는 속도다. 사단법인 넥스트가 발간한 돌발가뭄 보고서를
보면, 국내에서 여름철 고온으로 인한 ‘폭염형 돌발가뭄’의 발생
빈도와 지속일수는 확연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의 기후변화
추세가 이어진다면 폭염일수와 무강수일수가 함께 늘어나면서,
돌발가뭄 리스크는 앞으로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돌발가뭄으로 인한 물 부족 피해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특히,
장마가 끝나고 극심한 폭염이 찾아오는 8월에 급수 피해가 급증하는
추세다. 전 세계적으로도 돌발가뭄으로 인한 피해 사례가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2012년 미국 중서부에서는 2주 만에 가뭄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약 40조 원의 농업 피해가 발생했다. 수자원을 뺏어가는
돌발가뭄의 속도가 그만큼 위협적이라는 뜻이다. 더 나아가
돌발가뭄은 단순히 물이 마르는 문제로 끝나지 않고, 대형 산불을
급증시키거나 가축 폐사를 유발하는 등 이차적인 피해를
불러일으키는 복합재난이 될 수 있다.
‘물 집약적’ 첨단 산업 지키려면
돌발가뭄에 대한 대비책 마련은 국가 미래 첨단 산업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국가의 핵심
미래 산업은 모두 엄청난 양의 물을 소비하는 ‘물 집약적 산업’이다.
만약 이들 산업 단지가 위치한 지역에 폭염과 결합한 돌발가뭄이
엄습해 용수 공급이 갑작스럽게 중단된다면, 그 경제적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특히 한국은 연간 수자원의 절반 이상을
여름철 강수에 의존하기 때문에, 장마 이후 찾아오는 돌발가뭄은
국가 용수 공급 전체 체계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리스크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조속히 돌발가뭄의 위험을 정식 재난으로 규정하고, 이에
적합한 감시·예보·대응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현재 국가 가뭄
예‧경보 시스템은 6개월 누적 강수량 중심의 기상가뭄 지수와 월
단위 전망에 의존하고 있다. 단순 강수량만을 고려하던 기존 가뭄
지수에서 벗어나 기온과 증발산량을 반영하는 지표를 도입해 더욱
정밀한 체계를 갖춰야 한다. 돌발가뭄의 빠른 속도에 대응하려면
예·경보 빈도도 더 짧아질 필요가 있다.
국가 수자원 관리의 틀도 바꿔야 한다. 첨단 산업 단지의 안정적인
용수 확보를 위해 하수재이용, 해수담수화 등 입체적이고 전향적인
수자원 인프라 확장 노력이 시급히 병행돼야 한다. 돌발가뭄을 관리
가능한 기후 리스크로 재정의하는 것, 그것이 기후위기 시대에 물을
지키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