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흐름

삶을 그리는 해녀

이유정

해녀는 바다에서 삶을 건지고, 화가는 그것을 그림으로 남긴다. 이유정 해녀는 두 삶을 함께 살아간다.
오늘도 물질을 마친 뒤 붓을 들어 해녀의 얼굴과 제주의 시간을 기록한다. 사라져가는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다.

글. 임혜선    사진. 봉재석

이호순력도(2023) ©이유정

테왁을 내려놓다(2026) ©이유정

Q. 30대에 해녀가 되시고 그림도 그리기 시작하셨어요.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꿈이 참 많았습니다. 그림도 좋아했고, 악기도 배웠고, 중국어를 공부하기도 했고, 서울에서 여러 일을 하며 살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돌고 돌아 결국 다시 제주로 돌아왔어요. 동네에 앉아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생각하는데, 그때 해녀 삼춘*이 지나가시더라고요. 순간 그 삼춘 뒤로 빛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어릴 적부터 늘 곁에 있었던 해녀 삼춘이 내 미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해녀가 되기로 결심하고, 2019년에 해녀가 되었습니다.
해녀 생활을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건 해마다 은퇴하시는 해녀 삼춘들의 시간이 기록되지 않고 사라진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림으로 해녀들의 삶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올해는 해녀 탈의실과 새활용센터에서 해녀 삼춘들과 함께 만든 작품을 전시했고, 앞으로도 전시를 통해 제주 해녀의 삶과 문화를 더 많은 분에게 전하려고 해요.

* 삼춘 제주 방언으로, 혈연과 관계없이 친근함과 존경을 담아 어른이나 선배를 부르는 호칭. 해녀들 사이에서는 선배 해녀를 ‘삼춘’이라 부른다.

Q. 해녀가 되니 어떠셨나요?

처음 바다에 들어갔을 때는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습니다. 숨도 차고 장비도 무거웠고, ‘해녀가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그 과정을 하나씩 해내면서 해녀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커졌습니다. 제 구역 안에서 자유롭게 바다를 누비며 물고기를 바라보고, 조류에 흔들리는 미역을 보는 순간들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입니다. 지금은 힘든 만큼 보람도 큰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Q. 바다에서 지내며 새롭게 배우거나 느낀 점이 있다면요?

무엇보다 자연은 사람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배웠습니다. 조류를 거스를 수도 없고, 바다가 주는 만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해녀는 바다를 이기려 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그날 수확이 좀 부족해도 해녀 삼춘들은 욕심내지 않고 “내일 또 잡으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바다를 대하죠. 그 마음이 있었기에 제주 해녀 문화도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겹겹이 쌓인 숨(2023) ©이유정

Q. 그림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나요?

제 그림은 대부분 제가 직접 본 것들입니다. 바닷속의 빛, 해녀 삼춘의 얼굴, 물질을 마친 모습, 해양쓰레기까지 모두 작품이 됩니다. 특히 해녀 삼춘들의 얼굴에는 제주 바다의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해녀를 그리는 일이 곧 제주 바다를 기록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그림을 보신 분들이 “10년 뒤에도 이 해녀들이 바다에 들어갈 수 있을까”를 한 번쯤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한 바다가 있어야 해녀 문화도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Q. 지난해 해양 보호 다큐멘터리
<씨그널>에도 출연하셨어요. 쓰레기를 꾸준히 줍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끔 “돈 받고 하는 일이냐”,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제 회사니까요”라고 답합니다. 제가 일하는 곳이 바로 바다니까요. 제가 쓰레기를 조금 더 줍는다고 하루아침에 바다가 깨끗해지지는 않겠지만, 제 모습을 보고 또 다른 누군가가 함께한다면 그때부터 변화가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도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10년, 20년 뒤에도 다음 세대의 해녀들이 같은 바다에서 숨비소리를 내며 물질하고, 해녀 문화가 박물관 속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삶으로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그 바다와 사람들의 시간을 오래도록 기록하는 해녀이자 화가로 남고 싶습니다.

Q. 이유정 해녀님께 ‘물’은 어떤 존재인가요?

물은 참 신기한 존재입니다. 손으로는 잡을 수 없을 만큼 유연하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바위의 모양도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해녀 역시 바다와 싸워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물의 흐름을 읽고, 파도에 몸을 맡기며 살아갑니다. 저도 물처럼 유연하지만 강인하게, 길이 막혀도 또 다른 길을 찾아 흐르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 한 방울은 결국 강을 지나 바다와 이어집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다르지만 모두 같은 물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제주를 찾게 되신다면 바다 위 풍경뿐 아니라 그 아래도 한 번 상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바닷속에는 물질하는 해녀와 해조류, 작은 물고기,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바다가 10년 뒤에도, 100년 뒤에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러분과 저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는 오늘도 바다로 출근해서 저의 노력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