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수자원의 가치
기후변화로 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고 있다. 이상기후가 일상이
되면서 안정적인 용수 공급뿐 아니라 홍수와 가뭄에 대응하는 능력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여기에 물을 활용한 재생에너지 생산,
수변공간 조성을 통한 환경 개선,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기대되면서
수자원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가치는 이전보다 훨씬 넓어졌다.
산업 현장에서도 변화는 뚜렷하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비롯한
첨단 제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공업용수의 중요성은 한층 커졌고,
특히 초순수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초순수는 물속의 이온과
유기물, 미생물, 미세입자 등을 거의 완벽하게 제거한 고순도 물로,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웨이퍼를 세정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이제
안정적인 물 공급은 첨단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가 됐다.
이러한 변화는 해외의 정책과 제도에도 반영되고 있다. 미국은
수자원사업을 평가할 때 경제적 편익뿐 아니라 생태복원, 기후변화
대응, 미래 위험 저감, 지역사회 회복력까지 주요 편익으로
인정한다. 일본 역시 유역 전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기후변화 적응과 생태복원 가치를 물 인프라 사업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물관리 인프라를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공공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자산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반면 국내 타당성조사 체계는 이러한 변화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과 생태복원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수자원
사업의 경제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여전히 기존 편익 중심에 머물러
있다. 그 결과 새롭게 발생되는 가치들이 사업성 평가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안산 시화나래조력공원
기존 편익 체계의 한계
현재 수자원 분야 예비타당성조사에서는 생활·공업·농업용수 공급,
홍수피해 저감, 수력발전, 환경개선용수, 레크리에이션 등을
중심으로 편익을 산정한다. 최근에는 노후 관로 복선화와 갱생사업에
따른 용수 공급 안정성 편익이 추가됐지만, 평가의 큰 틀은 2008년
마련된 기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같은 기준은 사회가 새롭게 요구하는 가치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초순수다. 현재 첨단산업에 공급되는
초순수도 일반 공업용수(원수, 정수, 침전수)와 같은 기준으로
편익을 산정하고 있다. 그러나 초순수가 창출하는 경제적 효과는
일반 공업용수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초순수 1톤이 산업에 투입될 때 발생하는 부가가치는 약 2만2천
원으로 분석된다. 그럼에도 별도의 편익 항목이 없어 사업성이
실제보다 낮게 평가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을 활용한 에너지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는 수력발전만 에너지
편익으로 인정되지만, 최근 확대되고 있는 수상태양광과
수열에너지가 제공하는 다양한 편익은 평가 체계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 수상태양광은 전력 생산뿐 아니라 수면 증발량 감소와
녹조 억제, 토지 이용 절감, 온실가스 저감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수열에너지도 냉난방 에너지 절감과 온실가스 및 대기오염
저감에 기여하지만, 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제도적 기준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수변공간도 기존에는 관광객 이용에 따른 레크리에이션 가치 정도만
인정받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시민들에게 휴식과 여가 공간을
제공하고, 생태계를 복원하며, 지역 관광과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한다. 시장에서 가격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이러한 가치 역시
앞으로는 편익 체계 안에서 함께 평가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편익 체계의 방향
초순수 공급이 만드는 산업 경쟁력, 물에너지 활용, 수변공간과
생태계 서비스의 가치까지 제도적으로 인정해야 정책의 타당성을
보다 현실적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업용수 공급 편익에 초순수를 별도 항목으로
반영하고, 수력발전에 머물러 있는 에너지 편익을 수상태양광과
수열에너지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수변공간이 제공하는
생태계 서비스와 지역 활성화 효과를 공식적인 편익 체계에 포함해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사업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물은 더 이상 공급하고 소비하는 자원에 머물지 않는다. 첨단산업을
움직이는 기반이자 탄소중립을 뒷받침하는 에너지원이며, 지역의
활력을 키우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핵심 자산이다. 변화한 시대에
걸맞은 기준으로 수자원의 가치를 평가하는 일, 그것이 미래 물관리
정책의 경쟁력을 높이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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