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토픽

AI 시대의 새로운 냉난방 해법

수열에너지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의 확산으로 전력 소비가 빠르게 늘고 있다.
서버를 가동하는 데 많은 전력이 필요한 만큼, 서버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는 데도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에너지 부담은 줄이면서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으로 냉난방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바로 물이 품은 온도를 냉난방에 활용하는 ‘수열에너지’다.

글. 편집실    자료. 한국수자원공사

강원 수열에너지 융복합 클러스터의 수열원으로
활용되는 소양강댐

물의 온도, 에너지가 되다

사람들이 한여름 더위를 피해 강이나 바다를 찾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여름에는 물이 주변 공기보다 상대적으로 시원한데 이는 물이 공기보다 에너지를 축적하는 능력(비열)이 높기 때문이다. 물은 열을 받아도 온도가 쉽게 변하지 않아 여름에는 공기보다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이처럼 물이 가진 열에너지를 냉난방에 활용하는 기술이 ‘수열에너지’다.
수열에너지는 연중 비교적 일정한 물의 온도를 활용하기 때문에 태양광이나 풍력 등 다른 재생에너지와 달리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또한 기존의 냉난방 방식과 비교해 여건에 따라 30~70%의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으며, 탄소 배출 감축 효과도 있다. 물을 이용해 열을 식히기 때문에 기존 냉방장치에 필요한 냉각탑 사용을 줄일 수 있어 소음과 진동은 물론, 도시의 열섬현상을 완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강원 수열에너지 융복합 클러스터 조감도

AI 시대, 데이터센터를 식히는 물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는 데이터센터의 냉각 에너지 확보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수열에너지는 차세대 친환경 냉난방 에너지로 주목받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대표적인 전력 다소비 시설이다. 데이터센터 한 곳이 사용하는 연간 전력은 평균 25GWh로 4인 가구 약 6천 세대가 사용하는 양과 맞먹으며, 이 가운데 30% 이상은 서버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는 데 사용된다.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할수록 서버의 처리용량과 집적도는 높아지고, 서버 냉각에 필요한 에너지도 증가한다. 이에 따라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차가운 해수나 호소수, 하천수 등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여 데이터센터의 냉각 효율을 높이는 데 쓰고 있다.
국내에서도 수열에너지를 활용한 데이터센터 구축이 진행 중이다. 한국수자원공사가 강원도 춘천시에 조성 중인 ‘강원 수열에너지 융복합 클러스터’의 핵심은 소양강댐 깊은 곳의 차가운 물이다. 소양강댐은 국내 댐 가운데 수심이 가장 깊어 연중 9.5℃의 낮은 수온을 유지한다. 이 심층수를 활용해 클러스터 내의 데이터센터를 냉각하고, 냉각 과정 후 온도가 높아진 물은 스마트 팜의 난방에 재이용한 후 춘천시로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잠실 롯데월드타워

수열에너지를 활용한 잠실 롯데월드타워의
냉난방 시스템

건물에서 집까지,
확장되는 수열에너지

한국수자원공사는 광역상수도 관로 인근의 대형 건축물과 공공시설을 중심으로 수열에너지를 확대하고 있다. 2006년 주암댐 수력발전소에 수열에너지를 최초 도입한 이후 전국 32개 댐과 정수장에서 수열에너지를 냉난방에 활용하고 있다. 지난 2014년에는 서울 롯데월드타워에 수도권 광역상수도 원수를 활용하여 국내 최초 대규모 수열에너지 사업을 시행하였다. 10.5MW 규모의 수열에너지 공급으로 전체 냉난방 부하의 약 10%를 담당하며, 에너지 사용량은 35.8%, 온실가스 배출량은 37.7% 줄이는 효과를 냈다.
2022년부터는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함께 민간과 지자체를 대상으로 대형 건물 등에 수열 설비 설치를 지원하는 수열에너지 보급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 사업을 통해 지난 2025년 12월 한국무역센터 수열에너지 사업이 준공되었으며, 이는 단일 시설 기준으로 국내 최대 7,000RT 규모로 연간 약 10.8억 원의 에너지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외에도 서울 영동대로 복합 환승센터, 현대자동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 등에도 수열에너지 공급을 추진 중이다.
최근에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공동주택 분야에도 수열에너지 도입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해 경기도, 경기주택도시공사와 ‘하남 교산 공동주택 수열에너지 공급 시범사업’ 협약을 체결하고, 오는 2032년 경기도 하남시에 조성되는 공공주택지구 763세대를 대상으로 광역상수도 원수 약 1만 7,000톤을 활용해 1,000RT 규모의 수열에너지를 각 세대에 직접 공급할 계획이다. 기존 대형 건축물이나 단지 중심으로 활용되던 수열에너지를 공동주택의 세대별 주거 공간에 직접 적용하는 첫 사례이다. 이를 통해 에어컨 실외기 없이도 기존 냉난방 방식보다 에너지 사용량을 약 35% 절감해 에너지 비용 부담 완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물이 가진 새로운 가능성

이처럼 수열에너지는 대형 건축물을 넘어 데이터센터, 공동주택, 첨단산업단지까지 그 적용 범위를 넓혀가며 도시의 새로운 에너지 인프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물의 흐름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데서 나아가 이제는 물의 ‘온도’까지 에너지로 활용하며 물의 쓰임을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데이터센터를 식히고 도시의 냉난방을 돕는 물. 수열에너지는 늘 우리 곁에 있던 물이 가진 새로운 가능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