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토픽

첨단산업을 움직이는 가장 깨끗한 힘

초순수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의 확산으로 반도체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생산 공정에 필요한 물의 중요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초순수는 반도체의 품질과 수율을 좌우하는 핵심 자원이다.

글. 편집실    자료. K-water

초순수가 사용되는 반도체 웨이퍼

반도체 경쟁력을 좌우하는 초순수

공정을 마친 초순수

초순수는 물속의 이온과 유기물, 미생물, 미세입자 등을 극한까지 제거해 이론상 순수에 가장 가까운 상태로 만든 물이다. 월드컵 경기장을 가득 채운 물에 참깨 한 알 정도의 불순물만 허용하는 수준에 비유될 만큼 높은 청정도를 요구한다. 일반 정수장이 약 7단계의 공정을 거친다면 초순수는 25단계 이상의 복잡한 처리 과정을 거쳐 생산된다. 이 때문에 초순수 생산은 물 분야에서도 최고난도의 기술로 꼽힌다.
초순수는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웨이퍼 표면의 미세한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각종 공정에 사용되는 약품을 희석하는 데 활용된다. 공정이 미세해질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입자 하나도 제품의 품질을 좌우하기 때문에 초순수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실제로 300㎜ 반도체 웨이퍼 한 장을 생산하는 데 약 7톤의 초순수가 사용된다. 반도체뿐 아니라 디스플레이와 이차전지, 바이오, 정밀화학 등 첨단산업 전반에서도 초순수는 필수 공업용수로 활용되고 있다.
첨단산업의 성장과 함께 초순수 시장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글로벌 초순수 시장은 2025년 약 46조 5천억 원에서 2030년에는 약 58조 9천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한국과 대만, 중국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세계 초순수 소비량의 약 40%를 차지한다. 그러나 초순수 생산 기술은 일본과 미국, 프랑스 등 일부 국가가 주도하고 있다.

기술 자립을 향한 도전

SK실트론 초순수 실증플랜트 내부

초순수는 반도체 산업의 핵심 기술이지만 그동안 국내에서는 설계와 시공, 운영, 핵심 소재·부품·장비 등 모든 분야에서 해외 기술 의존도가 높았다. 공급망 불안이나 무역 갈등이 발생할 경우 반도체 생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안정적인 초순수 생산 기술 확보는 기술 경쟁력을 넘어 국가 산업안보와도 직결되는 과제가 됐다.
이에 정부는 2021년부터 초순수 생산 기술 국산화를 위한 국가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핵심 연구기관으로 참여해 경북 구미 SK실트론에 하루 2,400톤 규모의 초순수 실증플랜트를 구축했다. 외산 장비(1단계)와 국산 장비(2단계)를 적용한 총 2단계 실증을 통해 설계·운영 기술 100%, 시공 기술과 핵심 기자재 70% 국산화를 달성했으며, 생산된 초순수는 실제 반도체 웨이퍼 양산 공정에 적용돼 국내 기술의 상용화 가능성도 확인했다. 이는 초순수 기술이 연구실을 넘어 산업 현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한 의미 있는 성과다.
현재 정부는 2030년까지 초순수 생산 전 공정의 기자재 국산화율을 90% 이상으로 높이는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에너지 절감형 생산 공정과 공급 기술을 고도화하는 한편, 초순수 플랫폼센터를 구축해 기업과 연구기관, 대학이 함께 기술을 개발하고 실증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도 조성할 계획이다.

공정이 미세해질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입자 하나도 제품의 품질을
좌우하기 때문에 초순수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아산신도시물환경센터 하수처리수재이용시설

물 순환으로 여는 미래

첨단산업이 성장할수록 필요한 것은 초순수만이 아니다. 반도체 공장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막대한 양의 원수도 함께 확보해야 한다. 이에 주목받는 대안이 하수재이용이다. 사용한 물을 고도 처리해 다시 공업용수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제한된 수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실제 대만의 TSMC는 공정수를 90% 이상 재이용하고 있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하수재이용률도 40%대 수준이다. 국내 하수처리수 재이용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공업용수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하수방류수를 초순수의 원수로 활용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해수와 하수 등에는 기존 공정으로 잡기 어려운 저분자 물질이 포함되어 있는데, 한국수자원공사는 이 저분자 물질을 제거하는 국가 핵심 기술개발 R&D를 수행 중이다. 이러한 기술이 상용화되면 용수 공급원을 다변화하는 것은 물론 물의 순환 이용을 확대해 지속 가능한 산업 기반을 만드는 데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 초순수는 단순히 ‘깨끗한 물’이 아니라 첨단산업을 움직이는 핵심 기반이자 힘이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안정적인 용수 공급을 넘어 초순수와 하수재이용 기술을 고도화하며, 첨단산업에 필요한 물을 국내 기술로 안정적으로 공급할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