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날인데도 배수구를 정리하시네요. 비도 오지 않는데 벌써부터 물길을 살피시는 이유가 있나요?
큰비는 늘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법이지. 물길은 비가 오기 전에 미리 살펴야 하네. 저기 광화문에 있는 내 발명품들을 둘러보다 왔는데, 자네 눈엔 내가 보이는 건가?
발명품이라면 세종대왕 동상 앞의 혼천의와 측우기? 그렇다면 조선의 천재 과학자 장영실 선생님이 아니신가요?
어허 내 이름까지 아는 겐가? 부끄럽네. 나는 미천한 노비로 태어나 어명을 받아 백성들을 위한 물건들을 만들었을 뿐이라네. 시작은 방금 우리가 씨름했던 저 ‘물’ 때문이었지. 큰 가뭄이 닥쳐 이를 어찌할까 궁리하다가, 관개수로를 파고 수차를 개발해 먼 곳에서 물을 끌어와 해결했지.
오늘날로 따지면 양수기 펌프를 만드신 거네요. 당시는 농사가 너무나도 중요했죠? 가뭄이나 홍수로 물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임금 자리까지 위태했다고 들었어요.
잘 알고 있구만. 그 일로 인해 동래 현감이 나를 추천해 궐에 들어가게 되었다네. 세종 임금의 어명으로 명나라에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지.
그런 기술을 축적해 만든 게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죠?
600년 전엔 해의 움직임이 아니면 시간을 알아낼 방법이 거의 없었다네. 나도 해시계 앙부일구를 만들었지만, 밤은 물론 흐린 날에도 아무 소용이 없었지.
그런데 물이 답이 되었군요.
물은 세상 어디에나 같은 모습으로 있지. 그래서 과학의 표준이 되어 왔다네. 온도계가 물의 어는 점과 끓는 점을 기준으로 삼듯이 말이야. 나는 물이 밤이고 낮이고 같은 조건에선 똑같이 움직인다는 점을 활용해 시계를 만들었다네.
자격루는 물시계에 정밀한 기계장치를 결합한 위대한 작품이에요. 항아리에서 일정한 양의 물을 원통으로 흘려보내, 물이 차면 막대가 올라가 구슬을 건드리고, 굴러간 구슬이 인형들을 움직여 종, 징, 북을 쳐 시각을 알리게 하셨죠. 게다가 세계 최초의 강우측정장치인 측우기도 만드셨잖아요. 그게 1442년의 일이라, 이탈리아의 베네데토 카스텔리가 1639년에 만든 우량계보다 무려 2백 년이나 앞선 업적이었습니다.
후에 문종 임금이 되시는 세자께서 나라의 가뭄을 근심하시며 얕은 비가 올 때마다 땅에 젖어들어간 정도를 자로 재곤 하셨는데 그게 정확한 기준이 될 수 없었지. 그래서 금속 원통에 눈금을 새기고 거기에 모인 비의 양으로 강수를 측정했지.
세계 최초로 국가 단위로 표준화된 기상측정기구라는 게 허명이 아니었어요. 빗방울이 떨어질 때 생기는 오차까지 고려한 기술은 현재 WMO(세계기상기구)가 정한 측정오차에도 합격할 만큼 뛰어난 업적이었더군요. 그런데 강우를 측정하더라도 비가 더 내리게 하거나 그치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게 어떻게 가뭄과 홍수를 막는 방법이 될까요?
물론 우리가 비의 양을 늘리거나 줄일 수는 없어. 하지만 비가 온 양을 정확히 알면 하천의 수문을 열고 닫아 물을 관리할 수 있지. 나는 측우기로 기상의 표준을 만든 뒤, 청계천 등 여러 하천에 수표교를 만들어 물의 높이를 측량할 수 있게 했지. 주먹구구가 아니라 정확한 수치를 기반으로 중앙의 통제 하에 전국의 수량을 관리하도록 한 거네. 그리고 매년 비의 양을 비교하면 올해 농작물의 작황도 예견할 수 있어 세금의 기준도 조정할 수 있었지.
강우의 측량과 수량의 관리는 농사는 물론 국가 경제의 기초를 세우는 일이었군요. 그렇게 표준화시킨 측우기를 전국의 천문관서와 관아에 설치하여 우량을 관측하고 보고하게 하셨죠? 그 기록은 수백 년 동안의 기후 변화를 아는 데도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그렇게 기억해 준다니 고맙네. 물의 흐름을 이해하고 슬기롭게 활용한다면 물은 백성을 살리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가장 큰 힘이 될 수 있다네.
장영실
조선의 과학기술자이자, 발명가. 노비 출신이나 기술자로서의
훌륭한 재주를
인정받아 조선 세종 때
상의원 별좌로 등용 되어, 과학 기술자로서 자격루,
측우기, 앙부일구를 만들며 조선의 기술을
찬란히 꽃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