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토크

물로 시간을 밝히고,
물로 세상을 깨우다

장영실

물과 관련된 과학기술이라면 무엇이든 궁금해하는 김물은 맑게 개인 하늘을 올려다보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타난 한복 차림의 한 남자가 배수구에 쌓인 쓰레기를 치우고 우수관을 살피며 물길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명석 문화비평가 일러스트 심은경

김물   장영실
김 김

맑은 날인데도 배수구를 정리하시네요. 비도 오지 않는데 벌써부터 물길을 살피시는 이유가 있나요?

장 장

큰비는 늘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법이지. 물길은 비가 오기 전에 미리 살펴야 하네. 저기 광화문에 있는 내 발명품들을 둘러보다 왔는데, 자네 눈엔 내가 보이는 건가?

김 김

발명품이라면 세종대왕 동상 앞의 혼천의와 측우기? 그렇다면 조선의 천재 과학자 장영실 선생님이 아니신가요?

장 장

어허 내 이름까지 아는 겐가? 부끄럽네. 나는 미천한 노비로 태어나 어명을 받아 백성들을 위한 물건들을 만들었을 뿐이라네. 시작은 방금 우리가 씨름했던 저 ‘물’ 때문이었지. 큰 가뭄이 닥쳐 이를 어찌할까 궁리하다가, 관개수로를 파고 수차를 개발해 먼 곳에서 물을 끌어와 해결했지.

김 김

‌오늘날로 따지면 양수기 펌프를 만드신 거네요. 당시는 농사가 너무나도 중요했죠? 가뭄이나 홍수로 물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임금 자리까지 위태했다고 들었어요.

장 장

잘 알고 있구만. 그 일로 인해 동래 현감이 나를 추천해 궐에 들어가게 되었다네. 세종 임금의 어명으로 명나라에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지.

김 김

그런 기술을 축적해 만든 게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죠?

장 장

600년 전엔 해의 움직임이 아니면 시간을 알아낼 방법이 거의 없었다네. 나도 해시계 앙부일구를 만들었지만, 밤은 물론 흐린 날에도 아무 소용이 없었지.

김 김

그런데 물이 답이 되었군요.

장 장

물은 세상 어디에나 같은 모습으로 있지. 그래서 과학의 표준이 되어 왔다네. 온도계가 물의 어는 점과 끓는 점을 기준으로 삼듯이 말이야. 나는 물이 밤이고 낮이고 같은 조건에선 똑같이 움직인다는 점을 활용해 시계를 만들었다네.

김 김

자격루는 물시계에 정밀한 기계장치를 결합한 위대한 작품이에요. 항아리에서 일정한 양의 물을 원통으로 흘려보내, 물이 차면 막대가 올라가 구슬을 건드리고, 굴러간 구슬이 인형들을 움직여 종, 징, 북을 쳐 시각을 알리게 하셨죠. 게다가 세계 최초의 강우측정장치인 측우기도 만드셨잖아요. 그게 1442년의 일이라, 이탈리아의 베네데토 카스텔리가 1639년에 만든 우량계보다 무려 2백 년이나 앞선 업적이었습니다.

장 장

후에 문종 임금이 되시는 세자께서 나라의 가뭄을 근심하시며 얕은 비가 올 때마다 땅에 젖어들어간 정도를 자로 재곤 하셨는데 그게 정확한 기준이 될 수 없었지. 그래서 금속 원통에 눈금을 새기고 거기에 모인 비의 양으로 강수를 측정했지.

김 김

세계 최초로 국가 단위로 표준화된 기상측정기구라는 게 허명이 아니었어요. 빗방울이 떨어질 때 생기는 오차까지 고려한 기술은 현재 WMO(세계기상기구)가 정한 측정오차에도 합격할 만큼 뛰어난 업적이었더군요. 그런데 강우를 측정하더라도 비가 더 내리게 하거나 그치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게 어떻게 가뭄과 홍수를 막는 방법이 될까요?

장 장

물론 우리가 비의 양을 늘리거나 줄일 수는 없어. 하지만 비가 온 양을 정확히 알면 하천의 수문을 열고 닫아 물을 관리할 수 있지. 나는 측우기로 기상의 표준을 만든 뒤, 청계천 등 여러 하천에 수표교를 만들어 물의 높이를 측량할 수 있게 했지. 주먹구구가 아니라 정확한 수치를 기반으로 중앙의 통제 하에 전국의 수량을 관리하도록 한 거네. 그리고 매년 비의 양을 비교하면 올해 농작물의 작황도 예견할 수 있어 세금의 기준도 조정할 수 있었지.

김 김

강우의 측량과 수량의 관리는 농사는 물론 국가 경제의 기초를 세우는 일이었군요. 그렇게 표준화시킨 측우기를 전국의 천문관서와 관아에 설치하여 우량을 관측하고 보고하게 하셨죠? 그 기록은 수백 년 동안의 기후 변화를 아는 데도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장 장

그렇게 기억해 준다니 고맙네. 물의 흐름을 이해하고 슬기롭게 활용한다면 물은 백성을 살리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가장 큰 힘이 될 수 있다네.

장영실

조선의 과학기술자이자, 발명가. 노비 출신이나 기술자로서의 훌륭한 재주를
인정받아 조선 세종 때 상의원 별좌로 등용 되어, 과학 기술자로서 자격루,
측우기, 앙부일구를 만들며 조선의 기술을 찬란히 꽃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