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토크

무지개로 물을 다스리는 도시를 세우다

다산 정약용

“우와 무지개다! 전부 일곱 개.” 수원 화성을 찾은 방울이가 외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의아하게 쳐다봤다. 그도 그럴 것이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마치 시간을 건너온 듯한 한복 차림의 노인이 방울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산 정약용이었다.

글. 이명석 문화비평가    일러스트. 심은경

장다산 다산

허허, 저 무지개를 알아본 이가 또 있었군. 나는 이 화성을 설계한 다산 정약용이라네. 화성의 진가를 알아보는 이가 있어 찾아왔지.

방울 방울

실학의 대가이신 다산 선생님을 직접 뵙다니 정말 신기해요! 그런데 화성을 지으면서 왜 물길부터 손보신 거예요?

다산 다산

지금은 수원천이지만 당시에는 대천(大川)이라고 불렸지. 해마다 범람이 심해 임금께서 크게 심려하셨단다. 그래서 나는 성을 쌓기 전에 물길부터 손을 보았지. 북쪽의 화홍문과 남쪽의 남수문 자리를 먼저 정하고 준설 작업을 한 뒤, 광교산의 물을 화성 안으로 흐르게 했어. 그 위에 95척의 오교(午橋)라는 나무다리를 놓아 사람들이 건너게 했고.

방울 방울ㄴ

화홍문 동쪽에 있는 방화수류정이 너무 예뻐요. 여기서는 화성 안을 지나는 물길이 훤히 보이네요!

다산 다산

이곳은 물길과 주변을 감시하는 군사 시설이지만, 동시에 주위의 풍광과 어우러진 정자의 역할을 하도록 했지.

방울 방울

실용과 미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네요! 방화수류정 아래 연못도 그냥 경치를 위해 만든 게 아닌가요?

다산 다산

‘용이 잠든 못’이라는 뜻을 가진 연못이지. 그런데 그 용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그 아래에 섬세한 시설을 만들어 두어야 했네. 용연은 화성 내부의 홍수 조절과 배수를 위해 만든 수리 시설의 역할도 하고 있다네.

방울 방울

아! 그래서 제가 처음 봤던 화홍문에도 무지개다리가 있었군요. 일곱 개나 만든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다산 다산

수원천의 물이 평소에는 안정적으로 흐르고, 홍수가 나도 많은 물을 한꺼번에 흘려보낼 수 있도록 계산한 결과라네. 그래서 화홍문에 일곱 개의 홍예를 두어 물의 흐름을 조절하도록 했지. 또한 그곳에 군사와 무기를 배치해 적이 물을 따라 침략해오는 걸 막도록 했고. 이제 물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 보겠나?

방울 방울

좋아요! 그런데 물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홍예 말고 다른 시설도 필요했을 것 같아요.

다산 다산

그렇지. 그래서 성 안팎의 배수를 위한 암거를 만들었네. 그곳으로도 적이 침투할 수 있기 때문에 철책을 설치해 두었어. 더불어 성벽과 지형의 경사도를 계산해 비가 많이 올 때 물이 자연스럽게 성 밖으로 흘러나가도록 설계했다네.

방울 방울

그러니까 비가 많이 와도 물이 저절로 빠져나가도록 계산해 두신 거네요! 정말 치밀하세요.

다산 다산

하하 그리 평가해주니 고맙구만. 이제 남수문에 이르렀구만. 수원천을 성 밖으로 내보내는 아홉 칸의 아치형 수문이지.

방울 방울

와, 남수문까지 이어지는 물길이 하나의 시스템이었군요. 그런데 선생님은 평소에도 물을 참 좋아하셨나 봐요.

다산 다산

유배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내 말년의 꿈은 부가범택(浮家汎宅), 그러니까 물 위의 집을 갖는 것이었다네. 배에 그물과 낚싯대, 솥과 술잔을 싣고 식솔들과 함께 강을 따라 유람하면서 사는 거지.

김 김

물이 이렇게 여러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제대로 알았어요! 농업도, 교통도, 군사도, 심지어 여가까지요.

다산 다산

하하, 너무 떠들지 말게나. 내가 했던 말이 있네. ‘얕은 물은 소리 내어 흐르지만, 깊은 물은 소리 없이 조용하다.’

* 타임슬립 토크는 물과 관련한 역사 속 인물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가상 대담 코너입니다.

정약용(1762년~1836년)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기술자. 정조의 명을 받아 수원화성 축성에 참여해 거중기 등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며 공사의 효율성과 안전성을 높였다. 백성을 위한 실용 학문을 바탕으로 과학기술과 건축, 행정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기며 조선의 기술 발전을 이끌었다.